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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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 빛 아래에서

량웨이와 지미

 

 

 

 

 

 

 

 

 

 

 

 

 

 

 

지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미는 홍등 빛 아래에 있었다. 이는 그의 어미가 바란 것이 아닌 그의 아비가 바란 것으로 지미의 아버지는 풍수지리나 속설에 굉장히 예민하게 굴어 홍등 빛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는 손에 많은 금을 쥐게 된다는 무당의 말 하나 때문에 그리 군 것이었다. 녹은 밀랍이 뚝뚝 떨어지는 방 안에서 태어난 지미는 그해 태어난 것 중 해를 꽉 채우고 나와 유독 뽀얬고 듬성듬성 자라있는 머리카락은 유독 검었다. 어미의 말로는 그랬다. 어미는 힘들게 가지고 힘들게 낳은 자식이 향냄새에 머리라도 어지러울까, 아주 깨끗한 방에서 아무리 좋은 향일지라도 잘 피우지 않았었는데 그에 비해서 지미의 아비는 지미가 걷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무당이 있다는 신당으로 아이를 함께 데리고 갔었다. 무당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어린 지미는 두려움보단 발이 저려 아프다고 생각했고, 결국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할 때면 옆에 앉은 아비에게 꾸중을 듣곤 했다.

제발 여자를 좀 조심해. 소학교 입학을 위해 한 해도 쓰지 못할 가죽 구두와 여섯 해밖에 쓰지 않을 가방을 아주 좋은 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샀던 지미는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 무당의 말을 들었다. 아니. 여자가 있네. 그 아래 자식새끼도 있고. 그놈 머리가 아주 검다. 검어.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무당을 보던 아버지의 낯빛은 유독 창백했다. 그는 무당을 바라보다가, 무당 앞에 놓인 앉은뱅이 탁상을 보았고, 그러다가 곧 지미를 바라보았다. 떨리는 눈동자를 보던 아주 어릴 적의 지미는 그의 반응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두려워하시니 손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어린 소년은 제 아비의 손을 한참 동안 잡아주었다. 조금 뜨거운 체온이 차가운 피부에 묻어나 미적지근해질 때까지. 손바닥에 땀이 차 손을 비틀어 빼내고 싶을 때까지. 그렇게 있는 동안 남자는 소년에게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얕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러면 안 됐다느니, 너와 네 어미를 볼 낯이 없다느니, 하고 혼잣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남자의 반응을 이해하게 된 것은 지미가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인사해라. 량웨이라고 한다.”

너보다 한 살 형이고, 앞으로 우리 집에서 살게 될 거니까 알아둬. 지미는 아버지 옆에 서서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연신 닦아내고 있던 어미를 바라보았다. 무당집에 갔었을 적, 무당이 했던 말이 뒤늦게나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지미는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이었다.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물어볼 수 없었다. 아버지를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지미는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긴 했으나, 가장 사랑하는 이를 꼽자면 제 어미를 사랑했기에. 안 그래도 슬퍼하는 어미를 더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고 무어라 말하더니 여자의 어깨를 감싸안고서 지미의 방 밖으로 나갔다. 방에 홀로 남겨진 량웨이는 어떠한 생각도 없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앉아도 돼?”

지미는 헛웃음을 터트리고 대답했다. 그런 건, 앉기 전에 물어보는 거야. 알아? 량웨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등받이에 팔을 걸친다. 그리고 크게 난 창으로 보이는 정원을 눈에 담는다. 저런 거 가꾸는 건 얼마나 하냐? 악의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의문을 듣고 지미는 묘하게 불쾌했다. 량웨이는 그저 태어난 것밖에 하지 않았는데. 잘못은 지미의 아비가 저질렀음에도. 그걸 알면서도…… 지미에게 있어 량웨이는 그의 평온하고 안락한 가정을 완벽하게 깨부순 침략자와 다름없이 느껴졌다. 지미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으나 예법 선생에게 배운 것처럼 어눌하지 않은 발음으로 대답했다. 몰라. 아버지께서 하신 거라서. 아버지께선 저걸 만드는 데 금두꺼비를 세 개 줬다고 하셨어. 그러면 량웨이는 작게 콧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뒤늦게 물어본 거야.”

“뭐를?”

“의자에 앉는 거.”

“본론부터 말해. ……량웨이.”

“본론인데? 성격이 급한 동생이구만.”

“난 네 동생 아니야.”

“그런 거로 할까, 지미?”

량웨이의 검은색 눈동자에는 푸르른 녹읍과 물을 뿜어대는 코끼리 분수대가 맺혀있다. 내가 여기에 안 어울리는 사람 같아서. 허락을 구하면 네가 안 된다고 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냥 앉았어. 나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어. 아직 방도 안내 못 받아서. 살짝 휘어진 눈매 사이로 검은색이 사그라든다. 그것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을 때면 미약하게 반짝였고, 지미는 그게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순간까지도 죄를 지은 사람처럼 굴지 않고 뻔뻔스레 말하는 량웨이가 밉살스럽게 보인 걸지도 모른다.

“좀 있게 해줘.”

나 엄마도 죽었어. 이제 갈 곳도 없어. 여기서 내쫓기면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다녀야 해. 요즘 유행한다는 곰보병에 걸릴지도 몰라. 난 죽기 싫어. 지미. 우리 엄마, 폐병에 걸려서 죽었거든. 마지막까지 네 아빠 찾았어. 나 걱정하는 게 아니라, 너희 아빠 찾았어. 난 이제 여기밖에 없어. 량웨이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때문에 지미는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량웨이의 인생은 지미가 겪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상상하기 힘들었고, 안타깝게 느껴지긴 하나 공감하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미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침묵했다.

“난 너가 싫어.”

지미는 공감할 수 없는 걸 억지로 공감하는 대신 량웨이를 향한 감정과 기분을 입에 담았다. 량웨이는 지미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당연한 거 좀 말하지 마, 동생아. 나 같아도 내가 싫을걸? 얼마나 좆같겠어. 응~? 량웨이가 내뱉는 거친 욕설은 지미가 생전 접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웃겼고, 불쾌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량웨이란 사람이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어 유쾌하기도 했다. 여기에 있어. 네가 나가면 어머니가 쓰러질 거 같으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달랠 때까지만, 그리고 네가 방 안내를 받을 때까진 여기 있도록 해. 거슬리게 굴면 바로 내쫓을 거야. 지미는 침대에 누웠다. 손님이 있을 때 보이면 안 될 모습이었지만, 량웨이는 초대하지 않았지만 멋대로 쳐들어온 불청객에 가까웠으니 상관없었다. 뒤척이다가 등을 돌린다. 량웨이는 지미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럽게 큰 집이네~. 하고 작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소년은 그가 알지 못하는 량웨이의 좁은 집을 상상해본다. 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에게 있어 유해하기 짝이 없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거 자체가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금을 쥘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홍등 아래에서 태어나게 만든 남자가 량웨이 또한 홍등 아래에서 태어나도록 했을지에 대해서.

 

 

 

 

아버지는 량웨이가 몸이 좋지 않아 알리지 못했던 장남이라 소개했다. 어머니는 언제 울었다는 듯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량웨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도 아버지가 등을 툭 치면 싱글싱글 잘만 웃어댔다. 지미는 량웨이의 옆에 서서 괜히 발로 바닥을 쿡쿡 누르다가도, 타인과 눈이 마주칠 때면 입술을 위로 올려 웃어 보였다. 량웨이는 타인에겐 지미의 유일한 형이자, 병에 걸렸었지만 겨우 나은 남자로서 존재했다. 지미 또한 그의 유일한 동생이자 형보다 더 건강하게 태어난 남자로 있어야만 했다. 짜증은 났되 우울하진 않았다. 그 감정은 아주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까지 이어졌다.

“웬 홍등?”

“몰라. 네 아버지가 달아두라던데.”

“아버지 또 무당집 갔다왔어?”

“아, 지미. 나야 모르지. 네 아버지가 어디 나갈 때마다 나한테 말하는 거 봤어?”

졸업 학년을 앞둔 여름. 맞이한 방학을 맞아 지미는 아주 오랜만에 본가로 들어왔다. 지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가 나오고 삼 일 뒤였다. 간소한 짐이 든 가방을 들고서 집으로 찾아온 지미는 가장 먼저 어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안색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좋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여전히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량웨이를 미워하는 탓인 듯했다. 차라리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지미는 제 어미를 떠올릴 때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풀어 내린다. 그 모습을 본 량웨이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입을 열었다.

“야해.”

“드디어 머리가 돌아버렸구나. 웨이.”

“으응? 장난도 못 받아줄 정도로 여유가 없으신 건가, 우리 미스터 지미는?”

“한 대 얻어맞고 싶은 거면 그렇게 살살 나대지 말고 말을 해.”

지미의 말에 량웨이는 두 손을 위로 올린다. 오랜만에 반가워서 그랬어. 응? 장난이야, 장난. 능청스레 웃는 모습도 오랜만에 보니 퍽 반가웠다. 집에 좀 자주 와야 하나. 저 못생긴 게 반갑기까지 하는 거 보면, 자주 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던 지미는 결국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 천장에 달린 홍등을 모조리 떼어내고서 안에 든 초에 불을 후 불어 끈다.

“멋대로 떼도 돼?”

“안 될 게 뭔데. 계속 홍등 아래에 있으려니까 눈 아프고 머리 아파.”

“나가자고 하면 되잖아.”
“량웨이.”

“응?”

“내가 그렇다면 그냥 그렇구나, 해.”

“언제는 그러지 말라면서.”

“……넌 항상 말대답은 잘하는 거 같다? 됐어. 오리구이나 먹으러 가자.”

“오. 좋지. 베이징 덕~?”

“아니. 그냥 오리구이.”

네가 사. 지미가 옅은 미소를 입에 머금고 말하자 량웨이는 몸을 축 늘이고서 혀를 찼다.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도 없는 사람의 등골을 쪽쪽 빨아먹으라고 배워? 말과 달리 일어나 지갑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 찾지 못한 건지 탁자에 널브러져 있던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렇게 좀 안 하면 안 돼? 지미가 묻자 량웨이는 미간을 살짝 좁히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잘 정돈되지 못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툭 떨어져 어깨에 닿는다. 왜. 뭐. 어떠한 문제도 모르는 것처럼 구는 모습에 지미는 질린 낯으로 연신 한숨을 내뱉어댔다. 그러지 좀 말라니까. 넌 반쯤은 나랑 가족이잖아. 네가 무시당하면, 나도 무시당한다니까?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살핀다. 흐트러진 옷을 최대한 깔끔하게 고쳐 입는다.

“오히려 그런 게 좋지 않나?”

“어디가?”

“네가 더 돋보이잖아.”

“헛소리 계속 할래?”

지미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미간을 좁힌 채, 량웨이를 바라보자 량웨이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린다. 미스터 지미는 오늘따라 더 까칠하시네. 기분이 안 좋으신 모양이야.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량웨이가 지미의 옆에 선다. 제 반쪽짜리 동생의 어깨에 팔을 두른 남자는 눈을 살짝 접어 웃는다. 그러자 량웨이의 볼에 보조개가 폭 팬다. 지미는 량웨이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키가 큰 건장한 남자 둘이서 딱 달라붙어 서 있는 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지미. 봐.”

“보고 있어.”
“그럴싸한 모습의 너. 한량 같은 모습의 나. 네가 좀 더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

“그걸 네 입으로 말하는 거에서 아주 조금의 짜증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뿐이다만.”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량웨이는 여전히 실실 웃고 있다. 검은색 눈동자가 반들거린다. 난 그러려고 여기 있는 거야. 동생한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 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너도 좋은 거야. 좋게 생각해. 지미. 헤프게 웃는 량웨이를 보던 지미는 량웨이의 손을 쳐냈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짜증스레 대답하고 의자에 대충 걸쳐두었던 재킷을 입는다. 량웨이는 입을 비죽 내민다. 매정하다. 매정해. 혀를 끌끌 차면서도 어떠한 미련도 없이 지미에게서 멀어진다. 량웨이는 벽에 몸을 기대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는다.

“그래서, 오리구이 먹으러 갈 거야?”

“괜찮은 집이 거기밖에 없어.”

“도시로 가더니 입맛이 상당히 고급이 된 건 아니고?”

“량웨이.”

“장난 그만 칠게. 표정 좀 풀어.”

그것보다 오리구이나 먹으러 가자고. 량웨이는 언제나 지미가 짜증을 내도, 화를 내도 사람 좋은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로 넉살 좋게 말을 건네었다. 지미는 그런 량웨이가 마음에 들지 않다가도, 어떨 때는 편하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진 홍등을 발로 대충 밀어내며 방을 나선다. 지나가는 사용인들이 지미와 량웨이를 볼 때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량웨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너랑 있으니까 인사도 받아본다,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량웨이를 곁눈질하다가 지미는 자신들을 지나치는 사용인들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집에 온 김에 한 마디 해두는 게 좋으려나. 지미는 곧 제 아버지의 일과 재산을 물려받을 유일한 장자다. 량웨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함께 지낸 시간 탓에 든 정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량웨이가 받는 취급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느낄 때면 조금 불쾌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뭐라고 좀 해.”

“내가 뭐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네가 이 집에서 나가기 전까진 넌 장남이야.”

“아항. 그렇구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 느는 건 한숨뿐이었다. 지미가 연신 한숨을 내뱉을 때면 량웨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지미의 등을 팡팡 쳤다. 가볍게 생각해. 그게 너도, 나도 편하잖아. 량웨이는 앞을 본다. 지미는 집 밖으로 나와 량웨이가 받아야 할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고, 량웨이는 관심 하나 없는 주제에 성의 없이 맞장구를 쳤다. 어엉. 그래그래. 아, 칭따오 먹을 거야? 그러다가도 지미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면 멋쩍게 웃는 걸 반복했다. 거리를 걷는 내내 웃고 떠드는 량웨이와 지미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형제가 우애가 참 좋다며 따라 웃었다. 지미는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량웨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자신이 집안을 이어받으면 저들은 뭐라고 말할까.

“참, 남한테 관심이 많으셔. 그렇지?”

량웨이는 아스라이 먼 곳을 보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량웨이~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실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거 같던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량웨이는 이 마을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미는 입술을 달싹인다. 질렸어? 그의 물음에 량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지미는 다시금 량웨이에게 물었다. 질렸냐고. 량웨이는 언제나 어딘가로 떠날 것처럼 굴었다. 그러다가도 항상 집에만 있었다.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듯하면서도 실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미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지미는 좋게 말하면 단호했고, 나쁘게 말하면 이분법적인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물 흐르듯 술 흐르듯 살아가는 량웨이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퍽 마음에 들어했다.

“뭐가. 너를?”

“네가 날 질려하면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겠지.”

“그건 아니야. 공짜 밥 얻어먹는 게 쉬운 줄 알아?”

“공짜 밥은 네가 집에만 있어도 나오잖아.”

“그렇긴 해.”

“마을에 질렸냐고 물어보는 거야, 량웨이.”

계속 그렇게 말 돌릴래? 짜증스레 말하자 량웨이는 콧잔등을 찡그린다. 그냥 좀 넘어가자. 지미. 너는 왜 매번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냐? 지미는 량웨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짜증스레 대답할까 싶다가도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랬던 걸 떠올린다. 아랫입술을 이로 가볍게 씹어대다가 량웨이의 손을 쳐낸다. 그리고 그가 따라오든 말든 보폭을 넓게 해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야, 야! 량웨이는 멀어져가는 지미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또 뭐가 문제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량웨이는 지미를 따라 제법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지근하다. 바람에는 비릿한 풀내음이 묻어나 있다. 아스라이 멀리서 들려오는 량웨이의 목소리와 그 사이 사이에 들려오는 소의 울음을 들었을 때, 비로소 지미는 그 자신이 고향에 돌아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미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자 량웨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습관처럼 지미의 등을 두드린다.

“화는 좀 풀리셨나, 미스터 지미?”

량웨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미를 마을 내에 있는 오리구이 집으로 끌고 갔다. 여기 오리구이가 그렇게 맛있다. 어? 원래 맛있었다고? 어어, 더 맛있어졌어. 진짜야. 향신료를 아낌없이 뿌려서 굽나 봐. 칭따오랑 같이 먹으면 기가 막혀. 기절해도 모른다~. 지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모습이 같잖다가도 우스꽝스러워 결국 지미는 웃음을 터트렸다. 량웨이는 그 모습을 보며 옅게 웃는다.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능청스레 말하며 가게의 안으로 들어간다.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음식점의 종업원을 부른다. 여기 오리구이 한 마리 실한 거로 하나 주고, 칭따오 두 병 줘. 량웨이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맺혀있다. 뭐가 그리 기분 좋은 건지 연신 실실 웃어댄다. 지미는 턱을 괸 채, 량웨이를 직시하며 입을 떼어냈다.

“야. 오늘 기분 좋아?”

“갑자기?”

“기분 좋아보여서.”

“시비거는 건 아니지?”

“너 안에 내가 어떤 새끼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말이었어.”

“갑자기 기분 좋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시비 거냐고 그럴걸.”

“안 그래. 량웨이.”

“그건 그 사람이나 그런 거야.”

성격 좋은 사람 잘 만나고 다니는 거 같아서, 형은 안심이야~. 량웨이는 익숙하게 젓가락을 꺼내 지미의 앞에 두었다. 지미는 언제나 량웨이가 그의 아랫사람인 것처럼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름의 처세술이겠거니 하고 항상 말을 삼켰다. 그게 습관이 된 것은 상당히 과거의 일이었다. 지미는 습관처럼 입을 다문다. 량웨이는 지미의 앞에 앞접시나 젓가락을 놓아준 뒤에야 제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안 귀찮아? 지미가 묻자 량웨이는 허탈하게 웃는다. 챙겨주는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 량웨이는 그의 보잘것없는 서툰 배려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굴었다. 지미는 제 부모를 사랑했으나, 그들처럼 당연히 여기고 싶진 않았다. 탁자를 검지로 톡톡 친다. 고쳐야 할 버릇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커다란 오리구이가 올려진 그릇이 그들의 앞에 놓여진다.

“지미 도련님이 오랜만에 와서 큰놈으로 내왔어요.”

“아. 감사합니다.”

“내가 올 때는 며칠은 굶은 놈으로 내왔잖아.”

“이럴 땐 그냥 감사하다고 해. 웨이.”

“너는 오리구이 반만 안 되냐고 매번 귀찮게 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량웨이! 돈도 많으면서!”

“돈 많으면 뭐 해. 내 돈도 아닌데.”

“……하아. 얘는 무시하세요. 아주머니. 잘 먹겠습니다.”

지미는 겨우 웃으며 여자를 멀리 보낸 뒤에야 미간을 찡그렸다. 타인인 것처럼 말하는 모습이 신경쓰였다. 너, 우리가 가족인 건 알지? 지미가 묻자 량웨이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병따개로 맥주 뚜껑을 따고서 물때가 살짝 묻은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어엉. 알지. 우리 가족이지. 완전 가족이잖아. 피는 한쪽밖에 이어지지 않았지만. 자. 이거나 받아. 량웨이는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따른 유리잔을 지미에게 건넨다. 지미는 답답함에 안에 든 맥주를 단번에 들이마셨다. 따갑고, 쓰고, 그런데 또 시원하고……. 지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량웨이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더니 손뼉을 쳤다. 아하하, 하하! 야. 대학 생활 많이 힘드냐, 지미? 네가 그렇게 먹는 거 나 처음 봐. 지미는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처음 보는 게 당연했다. 대학 생활? 아주 쉬웠다. 감사하게도 어느 한 곳 부족함 없이 태어난 덕에 쉬워도 너무 쉬운 게 대학 생활이었다. 그런데, 지미에게 있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량웨이다. 오로지 량웨이밖에 없었다. 머저리처럼 구는 게 멍청해 보이다가도 바보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주제에 매번 본가에 돌아올 때마다 방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게 짜증 나서, 진짜, 신경 쓰여서, 그래서 지미는…… 그 집에서 유일하게 량웨이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좀 닥쳐. 골 울려.”

“너 그거 차가운 거 단번에 마셔서 그래.”

“속타서 그렇다. 속 타서.”

“더우면 선풍기 켜달라고 할까?”

“눈치가 없는 거야. 없는 척 하는 거야.”

지미는 량웨이 쪽에 놓여있던 맥주병을 잡고 안에 든 액체를 잔에 따랐다. 량웨이는 지미가 무어라 말하든 말든 젓가락으로 오리구이의 살을 헤집고 있었다. 녹은 기름에서 맡을 수 있는 고소한 냄새가 코안 점막에 달라붙는다. 나야 모르지. 진짜 없는 걸수도 있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고. 량웨이는 젓가락으로 발라낸 살을 입에 넣는다. 너 언제 졸업하냐. 너 졸업하면 나가려고 하는데. 량웨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별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지미는 젓가락을 쥐려던 손을 아주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다. 곧 하겠지. 마지막 방학이니까. 반년 정도 남았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서 량웨이처럼 뼈에 붙어있는 살을 발라내기 시작한다. 지미, 량웨이 그리고 이별. 두 개의 이름과 한 개의 단어가 잘 맞아떨어지는 거 같지가 않았다. 따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네 아버지가 나갈 때 돈은 주겠지?”

“……주겠지, 뭐. 안 주더라도 내가 따로 챙겨줄게.”

“동생한테 받는 건 가오가 안 살아. 너가 주는 건 됐어.”

“대체 무슨 기준이야?”

“음.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

“이해할 수가 없네.”

“이해하지 마. 안 하는 게 머리 안 아파.”

넌 안 그래도 생각이 많아서 문젠데. 그런 것도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 터진다. 량웨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고기 몇 점을 입에 넣는다. 우적우적 씹다가 목이 메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지미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량웨이에게 수많은 생각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는 그래선 안 됐다. 그 지미의 형인데 저리도 못생겼냐며 혀를 끌끌 차대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량웨이. 집에선 서자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불쌍한 량웨이. 지미에게 있어 량웨이는 언제나 동정해 마땅할 사람으로 존재했기에 지미는 떠오르는 생각과 그걸로 만들어진 말을 식도 뒤로 겨우 삼켜냈다.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둘 사이에 내려앉은 정적을 살라냈다. 량웨이는 그게 어색하지도 않은 건지, 오리구이만 연신 먹어대며 이따금 지미를 바라보았다.

“안 먹어?”

눈치도 생각도 없는 놈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다고, 내가. 지미는 미간을 찡그리고 오리 살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량웨이는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둔다. 지미가 곁눈질하자 언제나처럼 웃는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내가 결제하려고.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이는 모습이 밉살스럽다. 한참 뜸을 들이던 지미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진다. 네 마음대로 해. 말해도 안 들어먹을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 량웨이는 호탕하게 웃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어. 안 들을 거야. 내 마음대로 할 건데? 내 동생한테 이런 거도 못 해주냐?”

지미는 문득 궁금해졌다. 량웨이는 언제나 지미의 아버지이자 량웨이의 아버지인 남자에게 네 아버지, 라는 호칭을 잊지 않으면서 왜 자신에게는 꼭 내 동생이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지미는 또 량웨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해하기 위해서. 이해하면 다가올 이별을 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맞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지미는 이해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생각해야만 했다. 량웨이란 남자에 대해서.

 

부른 배를 문지르며 나오는 량웨이는 언제 배웠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너 언제부터 담배 폈어? 지미의 물음에 량웨이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어엉. 성인 되고 바로 피기 시작했어. 종이에 쌓인 담뱃잎이 타들어 갈 때면 매캐한 회색 연기가 허공에 피어올랐다. 지미는 량웨이의 옆으로 걸어가 손을 내민다. 량웨이는 지미와 담배를 번갈아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지미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아직 애인데 필 수나 있고?”

“어.”

지미가 담배를 입에 물자 량웨이의 라이터 불이 그것의 끄트머리에 닿는다. 담배를 가볍게 빨자 탁하고 매운 연기가 폐부에 닿는다. 잔기침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러면 량웨이는 연기를 내뱉으며 크게 웃었다. 아하하. 하하하! 눈물까지 맺힌 눈을 보며 지미는 인상을 썼다. 이딴 백해무익한 걸 대체 왜 태우는 거야. 뭐, 금방 죽고 싶기라도 해? 지미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담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량웨이처럼 연기를 내뱉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량웨이는 가쁜 숨을 내뱉다가 지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고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손을 휘적대며 버릇처럼 지미의 등을 친다.

“못 피면 피지를 마.”

“너도 피는 데 나도 필 수도 있지.”

“하긴. 일하면 담배 피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긴 하더라.”

“누가?”

“네 아버지가.”

량웨이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채로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았다. 다 탄 재가 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들고선 량웨이의 옆에 선다. 량웨이는 저 어딘가 아스라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저기에 뭐 좋은 거라도 있어? 지미가 묻자 남자는 드물게 미소를 지워낸 채로 말한다. 그런 게 있을 리가. 량웨이의 말투는 가벼웠고 목소리는 높았지만, 지미는 그가 조금 침울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타들어 가는 담배의 탁한 연기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지미는 괜히 땅을 툭툭 차댔다. 드문드문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둔다. 혀를 차며 머리카락을 엉성하게나마 손가락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량웨이가 입을 떼어냈다.

“지미.”

“왜. 웨이.”

“난 여기서 꽤 오래 살았었잖아.”

“그렇지?”

새삼스럽게도 지미는 그제야 량웨이와 자신의 시간을 더듬어보았다. 어릴 때는 코끼리 분수대가 있던 정원은 이제 서구식 정원으로 바뀌었다. 동남아 쪽 문화가 유행했던 어릴 때와 다르게 지금은 신식적이라 느껴지는 서구적 문화가 유행이라서, 지미의 아버지는 그 많은 돈을 들여 만들었던 정원을 단번에 없애고 영국이나 프랑스에 있는 대저택에나 있을 법한 정원으로 바꿔버렸다. 지미는 사실 동양의 색채가 강한 건물과 서구적인 정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는 무당의 말은 신의 언어처럼 듣고, 타인의 평가가 제 목숨과 같이 여기는 주제에 가족의 말은 전혀 들어 먹지를 않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서 지미는 그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았다. 코끼리 분수대가 더 낫지 않았어? 지미가 묻자 량웨이는 크게 소리 내어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떠다니다가 곧 사라진다. 둘 다 구렸는데. 근데 지금이 더 이상한 거 같긴 해. 량웨이는 손에 들고 있던 꽁초를 바닥에 지져 끈다.

“여기에 있으면 내가 완벽한 외지인이 된 거 같아.”

량웨이의 말에선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그건 조금 씁쓸하기도 했고, 탁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아주 독하고 매캐한 연기처럼 지미의 안에 짙게 내려앉았지만 금방 흩어질 것만 같았다. 지미는 량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았던가. 량웨이가 집에서 겉도는 존재라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마을 내에서 량웨이는 꽤 평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았는데. 아니었나? 지미는 결국 다 타버린 꽁초를 바닥 어딘가에 대충 내던져 버리고 량웨이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랑 같이 수도에 갈래?”

“수도?”

“어. 세 얻어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거기서 네가 살던가.”

“동생이 다 컸네. 다 컸어. 형도 신경 써주고.”

“정신 연령은 내가 형인 거 같은데.”

“네가 형 하던가. 지미 형이라고 해줘?”

“끔찍하군.”

지미의 미간이 좁아진다. 량웨이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실없이 웃으며 지미에게 몸을 툭 기댔다. 량웨이에게선 옅은 알코올의 냄새와 독한 담배 냄새가 났다. 네가 있을 때만 여기가 고향처럼 느껴져. 량웨이의 귓등이 붉다. 술을 과하게 마신 거 같긴 했는데. 취했나? 지미는 혀를 차며 량웨이를 일으켜 세웠다. 량웨이가 지미의 손을 뿌리치려 하면 그는 구겨진 바지에 가려진 다리를 걷어찼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 같은 게 왜 이렇게 고집만 부려. 짜증스레 말하면 량웨이는 그저 실없이 웃었다.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 고개, 너풀거리는 기름진 검은색 머리카락. 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지미는 가끔 량웨이가 차라리 아주 뻔뻔한 사람이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다면 돈이나 몇 푼 쥐여주고 내보낼 수나 있었겠지.

“야. 차라리 뻔뻔하게 굴어.”

“좋은 점이 있어?”

“내가 편할 거 같아.”

남자는 제 반쪽짜리 형이 보았던 먼 곳을 바라본다. 그곳은 아주 검었고, 동시에 반짝였으며 희미하기도 하다. 모순적이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그 풍경을 볼 때면 량웨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건 량웨이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지미는 일평생 알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별것도 아닌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미는 입을 떼어낸다. 그러다가 다시 닫는다. 퍼석하게 말라붙은 입술이 벌어질 때면 조금 따갑기도 했다. 결국 그는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한 채로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내리눌러야만 했다. 뭐라 말할 수 있는데. 난 량웨이의 진짜 가족이 되지도 못하고, 량웨이가 날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고 한들 난 쟤한테 가족이 되어주지도 못했는데……. 비틀거리다가 딸꾹질을 연신 하던 취객은 제 동생의 뒷머리를 꾹 내리눌렀다.

“너 꼭 생각하알 때면 그렇게 입술 벌렸다, 말았다 하더라.”

“……어쩌라고.”

“가볍게 생각을 해. 좀. 가볍게…….”

뭐가 그리 어려운데. 어려울 거 하나 없어, 지미. 량웨이의 미소를 유심히 바라보던 지미는 곧 팔을 두르고 있던 허리를 놓았다. 량웨이는 어, 어어. 하더니 곧 뒤로 고꾸라진다. 그는 퍽 멍청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보다가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지미를 올려보았다. 뭐해. 너 이거 폭행이야! 폭행! 지미의 입술 끄트머리가 위로 올라간다. 낮은 웃음소리가 허공을 떠다닌다. 너 지금 멍청해 보이는 거 알기나 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지미의 허리가 아래로 굽어진다. 웃음소리는 점차 작아졌지만, 끊이진 않았다. 량웨이는 지미를 올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가 곧 헛웃음을 터트린다. 좋단다. 어? 지 형 떨어트리고,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막 쪼개. 비틀거리며 일어난 남자는 결국 다시 헛발질해 바닥을 나뒹군다. 지미는 그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며 량웨이를 일으켜주었다.

“조심 좀 해.”

“너 때문에 넘어진 거잖아.”

“정중하되 심심한 사과라도 바라시는지?”

“됐다. 상상만으로 소름 돋아.”

“성격이 나쁘네.”

“어디가?”

“자각 못 하는 건 바보 같고.”

“차라리 쌍욕을 해.”

“어. 그럴까?”

“법정에서 만나자, 지미.”

량웨이가 입술을 비죽 내민다. 그러더니 곧 다 풀리고 뭉개진 발음으로 무어라 말한다. 말을 알아듣기가 영 힘들어 성의 없이 대충 대답한다. 어어. 그래.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의미도 없는 대화를 엉성하게나마 이어간다. 이따금 대화가 끊일 때면 그 틈새에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이 고이곤 했다. 량웨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로 입을 떼어냈다. 빨리 졸업해, 지미. 난 이제 여기서 살고 싶지가 않아……. 술에 취한 량웨이는 평소보다도 더 쉽게 속마음을 터놓았다. 뭉그러진 발음 탓에 잘 들리지도 않는 그 말에 지미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량웨이는 지미에게 몸을 반쯤 기댄 채로 고개를 아래로 툭 떨군다. 지겨워. 진짜로. 드문드문 걸려있는 간판에서 나오는 빛을 받은 피부는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다. 다양한 색채의 빛이 내려앉은 얼굴이 보였다. 지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량웨이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안광이 맺히지 않은 검은색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너 그거 알아?”

“뭐를.”

량웨이는 고개를 아주 조금 들어 지미와 눈을 맞춘다. 탁한 검은색 눈동자 속에는 오로지 지미만이 담겨있다. 네 아버지가 말이야. 량웨이가 그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지미의 아버지인 남자를 입에 담는다. 지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버지가, 왜? 지미는 량웨이의 얼굴에서 그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파편을 발견한다. 그것은 한없이 낯설었다. 지미는 입술을 달싹인다. 그러다가 입을 꾹 닫는다. 듣고 싶지 않았다. 지미에게 있어 남자는 그래도, 아버지였다. 유교적인 사상이 짙게 남아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정이 붙어서. 이따금 잡던 손의 온기를 잊을 수 없어서. 함께 갔던 장소라곤 전부 향 내음이 짙은 신당이었더라도 그래도 곁에 있던 사람이니까. 지미는 그가 알지 못하되 량웨이만 알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을 아는 게 덧없이 두려웠다. 잔뜩 굳은 지미의 표정을 본 량웨이는 옅게 웃는다.

“됐어. 관두자.”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도 돼.”

“됐다니까. 그래도 네 아버지인데 너한테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잖아.”

“네 아버지이기도 해. 량웨이.”

그러자 그는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다. 눈을 감았다가 떴고, 입을 닫았다가 벌리길 반복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가 내려간다. 술기운에 붉어져 있던 볼은 어느새 창백해져 있다. 량웨이는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버지와의 추억? 아니면, 지미와의 추억? 지미는 량웨이에 대해 가족 중에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량웨이의 생각 자체를 파악하며 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다. 엉성하게나마 가족이란 형태로 묶여있긴 하나, 량웨이와 지미는 타인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홍등 아래에서 태어나 손을 대면 미끄러질 정도로 질이 좋은 비단옷을 입고 자란 지미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살던 량웨이가 동등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둘은 근본적으로 살아온 환경과 누려온 것들이 달랐다. 지미는 그걸 자각하고 있다. 자각하고 있기에 이따금 불쾌했고, 그 간극을 좁힐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 가족인데. 분명 가족으로서 함께 하고 있는데. 왜 타인보다 가깝고 친형제보단 멀게 느껴지는 걸까. 지미는 이럴 때면 량웨이와 진정한 형제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치기 어린 생각에서 비롯된 아집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지미.”

지미의 상념을 끊어낸 것은 량웨이의 목소리다. 량웨이의 발음은 여전히 어눌했지만, 목소리는 단단하고 뚜렷했다. 지미는 량웨이와 눈을 맞춘다.

“왜?”

량웨이는 맞닿아 있던 입술을 느리게 떼어낸다. 생각을 해봤는데…….

“보통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고 해?”

그의 말에 지미는 되묻지도, 화를 내지도 못했다. 수많은 생각이 단번에 자취를 감췄다. 지미의 입술이 조금 벌어지자, 량웨이는 다급히 말을 잇는다. 아니. 내가 아버지가 없었어서. 너도 알잖아. 난 엄마밖에 없었던 거. 그래서,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고. 이상한 뜻은 아니고, 아, 씨발. 뭘 말해도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지미. 내가 여기서 떠나려는 이유가……. 량웨이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다. 그의 손가락 끄트머리가 잘게 떨리고 있다. 량웨이는 결국 고개를 아래로 완전히 떨궜다.

“봤거든.”

새벽이었고, 그냥, 갑자기 일어나야 할 거 같았어. 소변이 누고 싶었던 건지. 물이 마시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몸이 무겁고 불편해서 눈을 떴는데. 내 위에 네 아버지가 있었어. 홍등 빛 아래에서, 보이는 게 네 아버지와 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거였는데. 난, 나는……. 량웨이는 애써 웃으려 하다가 결국 미간을 찡그린다. 화를 참는 것 같으면서도 겨우 웃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기괴했다. 보통 아버지가 아들한테 칼을 들이밀어? 내가 정말 몰라서 그래. 지미. 내가 배운 것도 없고, 가족이라곤 날 낳아준 엄마와 너밖에 없었어서 그래. 불쾌하다면 미안해. 이런 상황에서도 을인 것처럼 사과와 변명을 내뱉는 량웨이에 지미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량웨이라는 피해자의 하나뿐인 가해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수치스러웠다. 그제야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미는 량웨이가 홀로 지내왔던 시간을 다 알지 못했다. 상상력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특혜이면서도 재앙과도 같아서. 형제가 단편적으로 말한 걸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멋대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뭉툭한 손톱이 손바닥에 닿는다. 힘을 주면 파고들 것처럼 살에 흔적을 남긴다.

“미안.”

지미는 사과할 수밖에 없다.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량웨이의 형제로서 량웨이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그러자 량웨이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네가 왜. 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로 있는 량웨이를 보며 지미는 입만 떼어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냥. 미안해. 미안해서 그랬어. 끄트머리가 갈라진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량웨이는 지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돌아가기나 하자. 밖에 너무 오래 있었네. 피곤할 텐데. 발을 떼어낸다. 그리고 앞으로 내디딘다. 둘은 미약한 빛무리가 내려앉은 밤거리를 걷는다. 불어오는 바람은 미지근하고 조금 습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에 곰팡이가 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미는 내려앉은 정적과 둘이 머금고 있는 침묵이 처음으로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흐릿한 시야에 빛이 고이다가 사라진다. 아랫입술을 씹어대던 지미는 결국 다시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미안해. 량웨이. 그러면 량웨이는 지미에게 시선을 두지도 않은 채로 대답한다. 그러니까, 네가 왜 미안해하는 거냐고. 딱히 미안할 짓도 안 했으면서……. 지미는 바닥에 시선을 두었다. 량웨이를 바라보는 게 새삼스럽게 두려웠다. 언제나 호의를 담고 있던 표정에 증오나 혐오가 담긴 걸……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미는 입에 침묵을 머금는다. 량웨이는 그걸 굳이 지적하지도, 만류하지도 않았다. 대신 집을 향해 걸었다. 량웨이의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지만, 지미에겐 어느 곳보다 편할 장소로 향한다. 마을 안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집에 다다랐을 때, 량웨이는 말했다.

“괜찮아. 지미. 나 너는 안 싫어해.”

 

그 이후로 지미는 량웨이와 주로 시간을 보냈다. 나가고 싶지 않다는 량웨이를 끌고 정원에 나가 햇볕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 식사할 때가 되면 지미의 방에서 사용인이 가져온 식사를 함께했다. 너무 과하지 않냐? 량웨이는 미간을 찡그린 채로 담배를 태울 때면 매번 지미에게 같은 걸 물었고 지미는 매번 별로, 하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사실상 방법이 량웨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왔던 지미는 량웨이가 처한 상황과 받는 대우를 잘 알지 못했다. 지미는 알아야 했다. 알아야 뭘 할 수 있었다.

“지미. 요즘 량웨이랑 어울린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지미는 그의 아비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지미는 앞에 놓인 찻잔만 내려보고 있다. 김이 피어오르는 찻물을 입에 넣고 싶지 않았다. 탁자를 검지로 톡톡 치던 지미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진다. 네.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요. 량웨이랑 어울리는 게 문제가 되나요? 나름 가족이잖아요. 남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무슨 너랑 량웨이가 가족이냐. 어? 격양된 말투와 높아진 목소리에 지미는 결국 미간을 찡그렸다. 량웨이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지미는 앞에 앉은 남자가 존중해야 마땅할 아버지란 것을 알면서도 불쾌함을 참아내기 힘들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짜증을 다 감춰내지 못한 지미를 보며 남자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지미의 손을 감싸 잡는다.

“걔는 네 가족이 아니다. 지미.”

“아버지의 아들이지 않나요.”

“고작 그런 게 가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건 아니지.”

“량웨이한테 좀 잘해주세요. 어차피 걔는 저 졸업하면 집 나갈 거예요.”

남자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량웨이가 그러디? 남자의 눈동자는 홍등의 빛을 받을 때면 흉흉하게 빛났다. 지미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기도 했는데…… 나갈 거예요. 걔는 원래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는 거, 딱히 달가워하지 않았었던 거 아시지 않나요. 그러니까, 걔 좀……. 지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버지? 지미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그를 부른다. 그는 고개를 아래로 처박은 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남자는 지미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마른세수를 연신 하다가, 곧 고개를 들어 제 아들을 바라본다. 량웨이와 거리를 좀 둬라. 지미. 네가 한 말은 고려해볼 테니까. 지미는 남자와의 대화를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더 파고들거나 귀찮게 굴면 대답조차 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얕은 한숨을 내뱉고서 의자에서 일어선다. 량웨이,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에요. 아버지. 지미는 그 말을 끝으로 남자의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은 뒤, 제자리에서 걸음을 몇 번 움직인다. 그리고 얇은 벽에 귀를 댄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발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그 뒤를 잇는 아버지의 말. 량웨이가 떠나기 전에……. 량웨이, 그게 떠나면 안 되는데……. 그게 있어야. 그놈이 있어야. 지미는 남자가 내뱉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그가 어떤 걸 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아버지는 량웨이를 무척이나 아꼈던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뭘까. 아버지는 뭘 바라는 걸까. 지미는 량웨이가 술김에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을 떠올린다. 보통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고 해? 그 말을 속으로 곱씹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겨우 잊어낸다.

편견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는 건, 가장 안 좋은 버릇이다. 지미는 그렇게 배워왔기에 습관처럼 편견을 만들어내는 량웨이의 말을 속에서 지워낸다. 주제에 얕은 죄책감을 느낀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숨을 고르게 내뱉어내고 들이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지미는 남자의 방에서 멀어진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용인들은 지미를 바라보며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그는 상당히 무관심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지나쳐갔다. 량웨이에겐 저러지 않았겠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 지미는 사용인들의 인사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자각은 존재했다. 사소한 행동과 말이 자신의 품격을 만든다는 걸, 지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온 게 그런 것이었기에 현재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발을 느리게 앞으로 내디딘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지미는 량웨이가 있는 방이 아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만 속에 남게 되었다.

“복잡하네…….”

방으로 들어온 지미는 문을 닫고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복잡하다, 복잡해.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기댄다. 열어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미지근하고 조금 습했다. 얕은 숨을 내뱉으며 지미는 몸을 뒤척였다. 품이 넉넉한 셔츠에 주름이 생기는 건 개의치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았다. 이를테면 량웨이와 아버지, 아버지의 이상행동, 량웨이의 말.

……량웨이.

지미는 의자 손잡이를 검지로 톡톡 친다. 그는 량웨이에게 있어 가해자의 자식이자 량웨이의 형제로서 존재한다. 술을 마신 다음 날, 량웨이는 멋쩍게 웃으며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가볍게 말했지만…… 지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 없었다. 정의로운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량웨이니까. 엄마를 어린 나이에 잃고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이 집에 들어와서 눈치만 보며 살았던 량웨이니까. 량웨이는 제 평온한 삶을 망쳐두긴 했으나, 그래도, 걔한텐 이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지미는 어릴 적의 량웨이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음을 쓰는 거다. 걔는 이제, 정말 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친구도, 가족도 없는 형제를 떠올릴 때면 지미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걸 느낀다. 멍청한 량웨이. 차라리 약아서, 마음이 못되어 처먹어서 날 이용하려고 했으면 대하기 편했을 텐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을 감는다. 망막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생각 정리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차라리 생각을 그만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잠에 들자. 차라리 짙고 깊은 잠에 들면…… 잠시나마 량웨이를 그리고 아버지를 잊을 수 있겠지. 지미는 잠들기 전까지 량웨이를 생각하게 된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의식이 흐려질 때까지 량웨이가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근데, 아버지는 정말 량웨이를 죽이려고 했을까?

지미가 눈을 뜬 것은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이다. 지미를 깨운 것은 아주 짙은 홍등 빛이다. 미간을 찡그리고 몸을 뒤척인다.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자,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짙은 향냄새가 났다. 지미는 그 향냄새를 어디서 맡았었는지 알고 있다. 지미의 아버지가 주기적으로 찾아가던 그 무당집에서 태우던 향내와 같았다. 난 지금 신당에 있는 건가? 지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겨우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익숙한 패턴이 인쇄된 벽지. 익숙한 가구와 그것들이 놓인 위치. 이곳은 신당이 아니라, 지미의 방이 맞았다. 그런데 왜 향냄새가 나는 것이며 홍등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걸까. 지미는 잠의 수마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 입을 벌렸다.

“누구 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에 쇠붙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흐릿한 시야가 거슬렸다. 초점을 명확히 맞추기 위해 지미는 미간을 찡그렸다. 한 남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는 채였다. 드문드문 있는 흰 머리카락과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낸 옷이 익숙하다. 지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량웨이가 있었다. 량웨이는 약이라도 한 것처럼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지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실실 쪼갰다. 야아. 지미. 내가 말했잖아. 니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한다고……. 원망하는 것처럼 들리진 않았다. 량웨이는 작금의 상황을 완전히 수용한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된 것처럼 눈을 끔뻑이며, 제 형제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홍등 때문에 그런가. 여기 방 존나게 덥다, 그치……. 느릿하게 내뱉은 말의 발음은 형편없이 뭉그러져 있다. 량웨이는 겨우 손가락을 움직인다. 지미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밧줄의 매듭을 매만지며 아, 하고 얕은 신음과 거친 숨을 내뱉는다.

“……야, 뭐해.”

낮은 목소리로 지미가 묻는다. 그러자 량웨이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지미와 눈을 맞춘다.

“풀어, 아, 풀어어 주려고.”

“너는?”

“난…… 됐어.”

체념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미가 보았을 때, 량웨이는 아주 작은 기적조차 믿지 않는 듯했다. 지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짜증이 났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량웨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한없이 불쾌했다. 량웨이가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매듭을 다 풀어주었을 때, 지미는 여전히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너, 뭐해. 량웨이가 묻자 지미는 이를 간다. 너 때문에 이런다, 왜. 내뱉을 수 없는 말이 혀 위에 남아 입이 꺼끌거렸다.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면 량웨이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그냥. 그러다가 죽겠지. 너도, 나도……. 량웨이는 지미의 아버지가 지미 만큼은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아마 지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저럴 수 있는 거겠지. 안 죽을 걸 아니까. 쟤는 절대 죽이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죽게 두지도 않을걸. 왜냐면 지미는 나랑 다르게, 이 집안에서 사랑받는 늦둥이 외동아들이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던 것을 결국 완벽하게 인정한 량웨이를 뒤덮은 것은 이제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우울이다. 입안의 여린 살을 씹어댄다. 약에 취해 흐린 의식을 붙잡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홍등 아래에서 붉은빛을 받으며 량웨이는 생각했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는 삶이었다. 가족이라곤 지미 밖에 없고, 지미가 떠난 뒤에는 사람대접도 못 받고 살았는데…… 오래 살아봤자 좋을 게 있기나 한가. 량웨이는 커다란 중식도를 든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본다. 량웨이를 태어나게 만든 것에 일조한 남자이자, 량웨이에게 있어선 완벽한 가해자인 남자가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실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태어나게 하지를 말지. 누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아나. 자기가 태어나게 만들었으면서. 싫었으면 뭐, 쌀 때 빼든가 했어야지. 남자는 가쁜 숨을 내뱉고 있다. 무당이 그러던데. 그놈의 지긋지긋한 무당 타령이 시작되었다. 량웨이는 짜증을 지워내기 위해 입술의 끄트머리를 위로 올려 웃는다. 지미는 싫증이 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사생아를 죽이면 다 잘 풀린다고 하더구나. 한 번만 부탁하마. 량웨이. 넌 내 아들이잖아. 이해해 줄 수 있지?”

네가 그리 좋아하는 지미도 덕을 보는 거랑 같은데.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니. 지미는 그 말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한 거면서. 진짜 신을 모시지도 않는 거 같은 무당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저 남자가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 판단한 적이 있기나 할까. 주먹을 쥔다. 남자가 량웨이의 앞으로 걸어와 중식도를 높게 치켜들 때, 지미는 힘을 주어 밧줄을 푸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남자를 밀친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중식도가 아래로 떨어진다. 중식도의 끄트머리가 남자의 발에 닿는다. 날카로운 날이 발에 파고든다. 동시에 아버지는 입술을 크게 벌리고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러댔다. 동시에 지미는 량웨이의 손을 꽉 잡고서 방을 박차고 나간다. 량웨이는 비틀거렸고, 벽에 몇 번이나 몸을 부딪치기도 했다.

“좀,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지미가 그렇게 묻자 량웨이는 드물게 인상을 썼다.

“네 아버지가 나한테 약을 얼마나, 처 먹였는지 알아?”

씨발. 나는 물에 탔을 줄은 몰랐지. 엉? 창백해진 안색이 홍등의 빛을 받을 때면 붉게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지미는 아버지가 뒤를 쫓아오지 않았음에도 괜히 걸음을 빨리한다. 야. 량웨이. 다리에 힘 좀 줘 봐. 지미는 보폭을 넓게 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말했다. 야. 그냥 나랑 살아. 거긴 홍등도 안 달아뒀어. 내가. 형광등 빛만 있고, 식물도 산세베리아인지 뭔지 키워. 여기보단 나아. 새벽에 닭 우는 소리도 안 들려. 여긴. 차라리 여기가 더 나을 거야. 너한테도, 나한테도. 우리한테도. 지미는 짓씹듯 말을 내뱉는다. 량웨이의 말이 옳았다. 량웨이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던 것이 그에게 대단한 실례를 저지른 것만 같아서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벌게진 얼굴을 가리지도 않은 채로,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서 지미는 집을 뛰쳐 나왔다. 량웨이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지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뗀다. 근데 너 돈은 있어? 돈이 있어야 뭘 할 거 아니야. 지미는 량웨이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넌 지금 고작 돈이 중요해? 량웨이의 시선은 지미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나 등에서 하늘로 향한다. 검은 눈동자에 별이 맺힌다.

“웨이. 돈은 언젠가 들어와. 어차피 저 사람들은 나 못 버려. 그리고 나 돈 없는 것도 아니야.”

“우리 지미 부르주아네. 도련님이라 불러줘~?”

“헛소리 계속할 거면 버리고 간다.”

“그러진 말고.”

너한테까지 버림받으면 울 거 같아. 량웨이는 가볍기 짝이 없는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지미는 그 말에 습관처럼 미간을 찡그렸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가, 결국 바닥에 시선을 둔다. 미안해. 량웨이. 그러면 량웨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뭐가 미안해. 미안할 것도 많다.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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