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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행성들을 헤아리며

아마시로 사다시 x 키리미치 토오루

 

 

 

 

 

 

 

 

 

 

 

 

 

 

 

“저 별, 이름이 뭘까?”

키리미치 토오루는 크게 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이름 모를 행성을 보고 있다. 아니, 행성이라고 칭해도 될까. 저것은 죽기 전의 행성이라서 빛을 내고 있는데. 그냥 이름을 찾거나 붙이는 것보단 별이라고 칭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마시로 사다시는 뒷짐을 진 채로 키리미치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글쎄. 이름은 없을 거 같은데. 우주선과 멀리 떨어진 행성을 보는 것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그것의 이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달이 다 지나기도 전에 관두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우주 속에서 행성은 수없이 많았고, 그걸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거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런 게 궁금해?”

“할 게 이런 것밖에 없는걸~.”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인조 햇빛 조명이 고장이 난 곳이 없나 봐야 하고, 식물에 물도 줘야 하고, 기록 일지도 적어야 하고.”

“사다시는 잔소리쟁이! 그만해~!”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키리미치의 시선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 닿아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것을 더 나아가 푸른 행성을 찾고 있다. 아마시로는 저 행동 뒤에 따라올 말을 알고 있다. 키리미치는 매번, 언제나 행성을 유심히 관찰한 다음에는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유리창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무릎을 쓸다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시로는 속으로 키리미치가 내뱉을 말을 읊조린다. 그러니까, 시작이…… 그래. 그 행성의 단어로 시작했었다.

“지구에 가보고 싶어.”

지구에 가보고 싶다는 말. 그것은 키리미치와 아주 가깝고, 친밀한 문장이었으나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는 키리미치와 한없이 낯설고 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토오루, 너는 지구에 가본 적이 없잖아. 우리는 지구를 본 적도 없는데, 왜 지구를 그리워하는 거야. 키리미치를 아끼고 그렇기에 유독 무르게 대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마시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격의 차이인 걸까. 성질의 차이인 걸까. 자라온 환경이 달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유성이라는 다소 단순하고 세련되지 못한 투박한 이름을 가진 거대한 함선의 속에서 자라온 인공적인 인간이 환경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키리미치는 그렇게 주장하곤 했으나, 아마시로의 생각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인공적으로 배양되어 여성의 장기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채로 태어났다고 한들 어릴 적에는 결국 똑같은 길을 걸어와 자신보다는 어른스러운 존재의 손길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것은 복도를 끊임없이 끝없이 돌아다니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들이 해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와 달리 무심한 성인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그에 비해 키리미치는 책에나 나올 법한 모성애와 부성애를 품은 듯한 다정한 성인들의 손길을 받고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러니, 그는 키리미치와 자신의 차이나 간극이 아주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라 여겼다.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니 생각만 품은 채로 카리미치의 곁에 있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지구가 왜 그렇게 가고 싶은 거야, 토오루?”

“내가 태어났을 수도 있는 곳이잖아.”

“우린 함선 안에 있는 인공 배양실 안에서 만들어졌는데?”

“다음에는 배양실에서 꺼내져서 세척실에서 씻겨졌다는…… 그런 말 할 거지?”

“응. 그랬었으니까.”

“지구를 가본 적이 없어도 지구를 그리워할 수는 있잖아.”

키리미치는 어딘가 아득히 먼 곳으로 시선을 둔다. 아마시로는 창문에 기댄 채로 앉아있는 키리미치를 보면서도 그의 등 뒤를 지나가는 안드로이드가 몇 채였는지 세었다. 세 개였나. 아니 네 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슬슬 일어나야 해. 사다시. 계속 농땡이를 피우다간 제임스 씨한테 혼날 거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말에 키리미치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제야 창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켠다. 아마시로의 옆에 서서 그를 올려보며 키득거린다. 계속 농땡이를 피우던, 지금 가던 혼날걸? 장난스러운 투와 평소보다 더 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하기야, 그렇겠지. 늦어도 한참은 늦었으니까. 키리미치가 먼저 앞서서 걷는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느긋이 시간을 보낸 탓인가 들뜬 기색이 여실히 드러났다. 가볍고 빠른 발걸음, 넓은 보폭. 주기적으로 기내에 방출되는 차가운 공기가 키리미치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훑어댄다. 길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에 넘실댄다. 죽은 형광등 빛을 받을 때면 미약하게 반짝이기도 한다. 어느새 아마시로의 시선은 키리미치의 머리에 닿아있다.

“사다시. 밤에도 별 볼래?”

“여긴 언제나 아침이고, 점심이고, 밤이잖아. 토오루.”

“시간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하루를 끝내고, 다음 날을 맞이하기 위한 시간.”

“토오루. 지금 꼭 지구 사람이었던 복자 할머니처럼 말하고 있는 거 알아?”

“나도 어떻게 보면 지구 사람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지구도 안 가본 사람을 지구 사람이라고 하진 않아.”

“꼭 지구에서 태어나야 지구 사람인가?”

“그렇지.”

“그러면 우리는 뭐야?”

“토오루랑 나?”

“응. 나랑 사다시.”

그러게. 우리는 뭘까.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은 아마시로의 혀 위에 켜켜이 쌓인다. 아마시로의 시선이 천장에 닿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녹 하나 슬지 않은 천장이 망막에 맺힌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키리미치를 바라본다. 빛을 받을 때면 그의 눈동자는 반짝인다. 그것은 우주의 별과 같았고, 기념일을 맞이할 때만 틀어주는 영상 속 지구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글쎄. 사람이겠지. 앞에 아무것도 붙지 않은 그런 사람. 행성명도 없이 어느 함선에서 왔다고 말해야 하는 고향이 존재하지 않은 그런…….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내리누른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것만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생각일까. 키리미치가 실망하거나 풀죽을 것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지 않을까.”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존재한다는 게 그리도 중요할까. 그저, 어느 하나 모난 곳 없이, 부족한 것 없이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마시로는 생각한다. 함선을 정비하는 정비사들이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걸 볼 때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과거만 그리워하며 흐느끼는 노년기의 여성을 돌볼 때마다, 그리고 이름도 모를 운석에 닿아 걸린 병 탓에 우주에 버려지는 사람을 볼 때면…… 아마시로는 지금 자신이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건지 다시금 깨닫곤 했다. 현행 유지가 가장 좋은 것이다. 모난 곳이 없어 타인과 척지지 않고, 가까운 친우가 하나 있고, 병들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지금의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모를 신의 축복을 받은 것과 같다. 그렇기에 아마시로는 굳이 자신의 고향을 확정 지어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어느 행성의 사람인지 입에 담지 않았다. 유성 함선에서 일본인 유전자 결합으로 만들어진 존재. 타 함선의 사람과 마주했을 때,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소개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에 비해서 감성적이지 못했고, 낭만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었기에 키리미치가 말하고 싶은 것을 예상할 수 없었으며 공감하기도 힘들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아마시로는 키리미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고 싶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것과 주어진 환경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기에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곳이 중요하진 않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사다시, 나는 꼭 지구에서 태어나고 싶었다는 건 아니야.”

“그러면?”

“지구에 가보고 싶어. 그게 전부야!”

어쩌면 우리의 고향이 됐었을지도 모르는 그 행성이 궁금한 거야. 키리미치는 나긋한 어투로 말하면서도 발을 멈추진 않았다. 아마시로는 곧 키리미치의 옆에 섰다. 그러면 오늘은 지구 사진이라도 같이 보자. 내가 제임스한테 받아둔 게 하나 있어. 너한테 줄게.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내 방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자. 아마시로의 말이 끝나자 키리미치는 눈을 접어 웃는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사이로 검은색과 회색이 사그라든다. 단 한 번도 자연의 빛을 받아본 적 없는 눈동자는 우리처럼 편의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아마시로는 그 빛이 참 좋았다. 죽은 유성의 빛보다, 이따금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태양의 빛보다, 스크린 속의 지구보다 더 오랜 시간 보고 싶었다. 그는 손을 아래로 내려 키리미치의 손가락 끄트머리에 제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잠시 고민하다가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는다. 부드러운 피부가 서로 비벼질 때면 조금 간지러웠고,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차가운 애매하기 짝이 없는 미적지근한 온기가 달라붙을 때면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마시로는 그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내리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죽어가는 행성이 빛을 내며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아마시로는 답지 않은 의문을 품는다.

우리 함선도 언젠가 멸하게 되면 저렇게 반짝일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당연하지 않은가. 모체에 가까운 것의 죽음을 바라는 듯한 바라지 않더라도 궁금해하는 듯한 것을 말하는 건, 불경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함선 밖으로 내쫓겨도 할 말이 없다. 그걸 알기에 아마시로는 더욱이나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함선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라고 배웠으니까. 함선이 죽으면 우리는 죽는 거니까. 아마시로 사다시와 키리미치 토오루라는 일본인 유전자를 주입하여 만든 배양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거니까……. 아마시로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입을 닫아야만 했다.

 

 

 

 

함선 안에서 일상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큰 변화가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평온 속에서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갔다. 살아가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거나, 삶이 각박하게 느껴지며 시간을 보내는 게 숨이 막혀오고 맞이하지도 않은 다음 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막연히 막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함선에서의 삶은 언제나 같았다. 어둠을 비추는 인위적인 빛이 내려앉으면 아침이었고, 그 인위적인 빛들이 하나둘씩 꺼져 취침 방송이 흘러나오면 밤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낮에는 일을 해야만 했다. 함선 안에서 본인 몫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는 게 힘들었기에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수많은 일 중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함선 안에 많은 이들의 입으로 들어갈 식량을 돌보고 살피는 일을 맡아 했다. 유전자 배합으로 만들어진 채소나 과일. 힘겹게 키워낸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을 돌보면 하루가 끝을 맞이하곤 했다. 그게 전부이자 끝이었다.

“이 닭, 이상하게 크지 않아. 사다시?”

“크면 좋은 거지. 먹을 게 많은 거니까.”

“저번 닭은 엄~청 작았는데.”

“그거는 먹을 것도 없었잖아.”

키리미치는 불만 하나 없이 가축의 배변물을 치우고 있다. 플라스틱 통에 배변물을 모으는 것까지가 일이었다. 가축의 배변물은 식물을 키워낼 때 유용하게 쓰이는 비료였기에 조금이라도 부족한 날에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시로는 배변물이 쌓인 통을 내려보다가 그가 들고 있는 막대로 가축을 축사 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조금 부족하지 않아? 그리 묻자 키리미치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소 축사까지 돌면 충분할 거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 그의 말을 끝으로 축사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는다. 잘 짜이지 못한 정적을 살라내는 것은 공기 순환 시스템이 돌아갈 때 나는 미약한 소음뿐이었다.

“이거 끝나면 뭐 할까?”

“식사하러 가야지. 끝났더라도 어디 못 가는 거 알잖아.”

“자가적 자유시간, 같은 거 안 되나?”

“나는 네가 제임스한테 벌받는 거 보고 싶진 않아. 토오루.”

“제임스의 벌은 너무 귀찮아. 반성문 열 장 이상 적어야 하는 게 말이 돼?”

“그정도면 나은 편이야.”

“차가워!”

“명확한 사실만 말하는 게 왜 차가운 거야.”

아마시로의 입술 끄트머리가 아주 살짝,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올라갔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를 바라보며 작게 소리 내 웃음을 터트린다. 아, 사다시 웃었다~. 들뜬 기색이 역력한 높은 목소리에 가벼운 말투. 아마시로는 괜히 낯간지러워 머금고 있던 미소를 황급히 지워냈다.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린다. ……안 웃었어. 잘못 본 거야, 토오루. 나지막이 내뱉은 말은 돼지와 닭의 울음에 지워진다. 키리미치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거로 하자. 가축의 배변물을 통에 얼추 다 담고서 구석에 둔다. 이건 비료를 뿌리는 담당인 칼이 와 가져갈 것이었다. 키리미치는 손을 툭툭 털어내고서 장갑을 벗는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입구 쪽으로 간다. 입고 있던 작업복을 벗어 수거함에 넣는다. 아마시로 또한 키리미치의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다. 작업복을 벗을 때는 오물이 벽에 튀었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을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함선 내를 청소하는 청소부가 이것 또한 깨끗이 닦아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메뉴는 좀 맛있으면 좋겠는데~.”

“항상 똑같은 거 배식받게 되지 않을까.”

“단백질 바?”

“탄수화물도 조금 있겠지. 오트밀 같은 거.”

“어제랑 똑같네.”

“식량은 아끼면 아낄수록 좋으니까.”

“가끔은 고기도 먹고 싶어~!”

“함성 탄생 해에는 먹잖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먹을 수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는 한 달에 한 번 먹고 싶어~.”

키리미치는 키득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아마시로는 어떠한 말도 없이 축사의 문을 열었다. 백색의 빛이 발등에 내려앉는다. 아마시로는 축사의 냄새를 잊어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훑고 빠져나간다. 아마시로가 복도로 나오자 키리미치는 그의 뒤를 따랐다. 축사 냄새는 오늘도 좀 지독한 거 같아. 저런 걸 동물 냄새라 하는 건가. 아니면 배변물 때문에 그런 건가. 재잘재잘 떠드는 키리미치를 힐끗 보던 아마시로는 그의 손을 잡는다. 식당으로 가야지. 방이 아니라. 아마시로의 말에 키리미치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식당을 향해 걸었다. 이따금 지나쳐가는 함선 안의 주민들과 마주칠 때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오루~. 일은 다 끝냈냐?”

멀찍이서 제임스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둔 채로 그들에게 걸어온다. 키리미치는 구김살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임스도 일 다 끝내고 식사하러 왔나요? 함성 공용어를 사용하는 둘을 바라보던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뒤에 서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제임스와 키리미치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단백질 바는 딸기 맛이더라. 아, 피스타치오 맛도 있긴 했는데 금방 동났어. 조금만 일찍 왔다면 피스타치오 맛을 고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제임스의 말에 키리미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그래도 딸기맛도 먹을 만하니까요.”

“일을 조금 더 빨리 끝내보지 그랬어.”

“동물들이 오늘따라 안 놔주더라구요.”

“인기가 많구만~.”

“동물한테 인기가 많아서 뭘 해요~.”

가벼운 웃음소리가 허공을 떠다니다가 곧 사라진다. 키리미치는 제임스와 대화를 얼추 끝맺곤 인사를 건넨다. 아마시로는 입을 꾹 닫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끝냈다. 살갑게 구는 키리미치와 달리 딱딱하기 그지없는 아마시로였기에 제임스는 그의 행동을 부러 지적하진 않았다. 익숙하기도 했고, 무어라 말한다고 한들 성격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아마시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는 것을 끝으로 식당 밖으로 나갔다.

“피스타치오 맛 궁금하긴 했는데. 아쉽다.”

“다음에 더 일찍 나오면 되지.”

“우리 업무가 너무 늦게 끝나~.”

“그러면 다음에는 먼저 식사하고 일하러 가자.”

아마시로는 익숙하게 키리미치를 달랬다. 그러면 또 키리미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판을 손에 들었다. 아마시로의 식판도 그의 손에 쥐여주는 걸 잊지 않았다. 제 몫의 음식을 받고서 자리로 가 앉는다. 식사라고 칭하기도 낯 뜨거운 음식을 본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의 단백질 바. 주먹만 한 크기의 오트밀. 채소 성분과 비타민이 들어간 주스까지. 하루에 먹어야 할 영양분만 제공된 것을 보고 아마시로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합리적인 방법이긴 했다. 함선에는 사람이 많고, 식재료를 포함한 모든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오히려 이런 보잘것없는 식사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맞았다. 질리는 것과는 별개로. 아마시로가 단백질 바의 포장을 뜯고 있을 때, 키리미치는 먼저 채소 주스를 마셨다. 몇 달 전, 돌아가신 릴리 아주머니께서 받은 오래된 지구 책에서 본 건강 비법이라며 채소가 성분이 들어간 주스나 젤리를 먼저 먹게 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그러면 목 막히지 않아?”

“물 마시면 되니까 괜찮아.”

“디저트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던데.”

“이렇게 먹는 게 건강에 좋대.”

“어차피 관리받고 있지 않아?”

“그래도 이렇게 먹으면 더 오래 살 수도 있잖아~.”

“오래 살아서 좋을 게 있어?”

“사다시랑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지나치게 솔직한 키리미치의 말은 언제나 낯설기 짝이 없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키리미치는 옅게 웃으며 아마시로를 바라보다가 얼마 남지 않은 주스를 마저 마셨다. 이거 끝나면 농장 구역으로 가자. 아마시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후 업무가 그거니까. 가긴 해야 했어. 나지막이 말하고 나서 다시 입에 단백질 바를 넣고 씹는다. 인공적인 딸기 맛이 영 별로였다. 다음에는 피스타치오 맛을 먹어보든가 해야겠어. 딸기 맛은 이제 좀 질린 거 같아. 아마시로의 말에 키리미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는 축사 일을 하기 전에 오자. 그러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주스를 다 마신 키리미치는 단백질 바를 오물오물 씹는다. 단출한 식사였으나, 둘은 퍽 오랜 시간을 식당에서 보냈다. 유일하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식당인 것처럼 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이따금 들긴 했으나, 틀린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허겁지겁 식사를 끝맺고 무언가에 쫓기듯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트밀은 오렌지 맛 같은 거 없나?”

“식감 때문에 오히려 끔찍할 거 같은데.”

“아니야.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어!”

“아니. 아니야. 토오루. 진짜 별로일 거 같아. 그거.”

물컹물컹하고 질퍽질퍽한 식감에 인공적인 오렌지 맛이라니.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아마시로의 미간이 드물게 좁아졌다. 최악일 거 같은데. 아마시로가 회의적이자 키리미치는 어깨를 으쓱인다.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식판에 얹어진 오트밀이 점차 줄어간다. 아마시로는 부러 키리미치의 먹는 속도에 맞춰 수저를 움직였다. 그러다가도 중간중간에 키리미치의 입가에 묻은 오트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걸 잊지 않았다.

“막 만들어진 애도 아니고, 이렇게 다 묻히고 먹으면 어떡해.”

“내 버릇이 나빠진 건, 사다시의 잘못도 있어.”

“내가 뭐.”

“이렇게 계속 닦아주잖아~.”

그렇게 큰 의미가 담긴 행동은 아니었다. 단순히, 묻히고 먹는 모습을 누군가 보면 키리미치를 우습게 볼까 봐. 비웃기라도 할까 봐. 그걸 보고 싶지 않아서……. 키리미치의 시선을 피한다. 별거 아니야. 정말로. 뭐 큰 뜻도 없고. 변명처럼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유순한 미소를 입에 머금을 뿐이었다. 서툰 아이를 대하는 듯한 모습에 아마시로는 고개를 아예 숙여버리고 싶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서늘한 금속은 아마시로의 체온이 엉겨 붙어 미지근해진지 오래였다. 짤막한 손톱이 손바닥에 닿는다. 그런 말 좀 하지 말고. 다른 사람 듣잖아. 그의 말에 키리미치는 또 순순히 끄덕인다. 알았어, 알았어. 맛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오트밀을 기계적으로 씹어 삼킨다.

“다 먹으면 농장으로 갈 거지?”

“응. 가야지.”

“오늘은 농작물 수확이었던가?”

“수확하고 시간 남으면 비료도 좀 뿌리자.”

“비료 뿌리는 담당은 다른 사람이잖아.”

“일 좀 거들어주면 탄생해에 음식을 조금 더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일이 늘어나는 거긴 해도, 좋게 생각하자.”

“톰에게는 고기를 한 조각 달라고 해야겠어.”

대화를 나누는 새에 식판 위에 있던 음식은 위장 속으로 다 집어넣어져 곧 사라졌다. 식사할 때 사용한 식기를 식판 위에 가지런히 놓고서 식기 반납함을 향해 걷는다. 반납함 앞에는 둥글둥글하고 크지 않은 안드로이드가 웃는 얼굴로 같은 말을 반복해서 뱉고 있다. 식기는 반납함에 넣어주세요. 남은 음식은 음식물 수거함에 넣어주세요. 프로그램에 입력된 말을 반복하는 안드로이드를 힐끗 보다가 반납함에 식판과 식기를 넣어둔다. 잠깐 방에 가서 쉬다가 농장으로 갈래? 키리미치의 말에 아마시로는 짧은 시간 고민한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인다면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어떠한 휴식 없이 바로 농장으로 가는 게 옳았다.

“쉬고 싶어?”

“쉬고 싶기도 하고. 그런 날 있잖아~. 일하기 너무, 너무, 너무 싫은 날!”

“그렇게 지정된 날은 없어. 토오루.”

“사다시만 모르는 거야. 모두한테 있는 날이야, 그건. 제임스도 그런 날이 있대.”

“제임스가?”

“응.”

“제임스는 원래 일하는 걸 싫어하잖아.”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

업무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나. 적성이나, 특성에 맞게 배분된 일이었기에 호불호 없이 그냥 하는 것에 가깝지. 아마시로에게 있어 업무란 그저 행위에 불과한 일이었다. 즉,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다. 입술이 선을 그린다. 그는 고민하다가 다시금 입을 떼어냈다. 잠깐만이야.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말이 나오니까……. 잠깐만 쉬었다가 농장 구역으로 가야 하는 건 알지? 약속해. 조곤조곤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눈을 감았다가 뜨다가 곧 다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표정은 마냥 해맑다.

“응! 그거 보자. 그거.”

“저녁에 보기로 한 거?”

“응. 보고 싶어.”

“안돼. 일 계속 미루면서 그거만 보고 있을 거잖아.”

“안 그럴게. 약속~.”

“정말로?”

“응. 정말로.”

아마시로는 키리미치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차라리 순수하지나 말지. 그런 주제에 순진하지 않을 건 또 뭐람. 그렇다고 마냥 영악한 것도 아니고. 그는 키리미치의 손을 감싸 잡는다. 미적지근한 온기가 서로 엉겨 붙는다. 그것은 하나가 되었다가, 떨어지며 찢어지길 반복했다. 손가락이 서로 얽힌다. 아마시로는 사람과의 접촉에 큰 유감도 없었고 기쁨도 느끼지 않았으나, 이따금 이렇게 키리미치와 손을 잡을 때는 나쁘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감정과 생각 또한 그리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 보면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에게 있어 논외의 존재였다. 복도를 걷는 내내 아마시로는 키리미치를 생각했다.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그가 직접 발을 디뎌보고 싶어 하는 멸망한 지구를 떠올린다.

“차라리 함선 수리공이 될 걸 그랬어.”

“위험하잖아.”

“위험해도 운이 좋으면 다른 행성을 볼 수도 있잖아!”

“그런 거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는 건, 바보 같은 거야.”

“바보같은 행동이 어떨 때는 또 낭만적인 일을 불러올 때도 있지.”

“하아. 말 좀 들어. 말 좀.”

벽에 붙어있는 지문 인식기에 엄지를 가져다 댄다. 작은 전자음이 들리더니 곧 문이 열린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발을 내디디자 서서히 불이 들어온다. 키리미치가 완전히 방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문을 닫는다. 그는 익숙하게 바닥에 앉는다. 아마시로는 그런 키리미치를 힐끗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 있던 상자 하나를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낡은 물건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키리미치는 그 속으로 손을 뻗는다. 구하기 힘든 나무로 만들어진 피리. 이제는 곧 찢어지고 형태를 잃을 것처럼 바스러진 낡은 우표. 지구에서 살던 지구인들이 우주를 동경하며 기어코 그 우주에 나갔을 때 찍은 지구의 사진. 키리미치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상자였다. 아마시로는 이따금 이걸 굳이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속에 든 걸 볼 때면 환하게 웃는 키리미치 때문에 버리고 싶진 않았다.

“너 가질래?”

아마시로는 반쯤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에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굳이 떠안고 살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정말로 키리미치가 달라고 말한다면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있었다. 상자뿐만이 아니긴 했다. 방에 있는 그나마 부드러운 이불. 솜이 덜 죽은 베개.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질이 좋은 것들도 키리미치에게 넘겨줄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키리미치는 상자에 닿아있던 시선을 아마시로에게 두었다. 말간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 빛무리에 아마시로는 입술을 달싹인다. 정말 가져도 돼. 다른 것도 가지고 싶으면 가지고.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고개를 젓는다.

“됐어~.”

“왜?”

“이런 핑계가 있어야 사다시 방에 한 번 더 오지.”

“핑계 없이도 와도 돼.”

“그래도, 있는 편이 남들한테 둘러대기는 좋잖아.”

키리미치의 손이 상자 속으로 향한다. 상자 속에 든 많은 것들을 헤집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헤집어지는 물건이 혹여나 망가질까 또 손을 움직이던 걸 멈추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키리미치는 아주 짧은 시간 고민하다가 지구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는 또 아주 애틋한 연인을 지구에 두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지구를 그리워하고 있다. 가본 적도 없는 곳을…… 이제는 함선 안에 몇 남지 않은 지구 사람에게나 들었던 지구라는 행성을 저렇게 그리워하고 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 그 안에 맺힌 프린팅 된 푸른 행성. 가본 적도 없는 곳을 저리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아마시로의 시선은 키리미치를 따라간다. 키리미치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바닥에 앉는다. 아마시로는 그의 옆에 앉았다. 섬세하게 짜인 정적이 둘의 위에 내려앉는다. 닫힌 문 너머에서 반복되는 안내방송과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 그것들은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살라내진 못했다. 키리미치는 사진을 보며 아마시로도, 심지어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지구에 대해 말한다. 그럴 때마다 키리미치는 생기가 돌았다.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있고, 그 속에 눈동자는 반짝이고. 입술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고……. 아마시로는 그런 키리미치를 볼 때마다 한없이 불안했다. 그러나 속에 고인 불안을 지워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평온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키리미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한없이 서툴렀으니 그의 옆에 있는 자신이라도 평온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에 잠겨있던 아마시로는 곧 제 아래에 있는 둥그런 머리를 내려본다. 언뜻 보아도 부드러워 보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싶은 것은 아마시로 뿐만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밤에 우주 보러 갈까?”

“지금 보러 가도 보이는 풍경은 똑같을 거야, 토오루.”

“복도가 어두워져서 행성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어!”

“행성은 언제나 잘 보여.”

“지구가 보일지도 몰라~.”

“바다는 다 말라서 푸른빛이라곤 조금도 없을 텐데도?”

“사다시, 차가워~.”

“토오루. 나는 지금 지극히 당연한 사실만 말하고 있어.”

“사다시는 꼭 지구를 직접 본 적 있는 사람처럼 말하네.”

아마시로는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내리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제로 지구를 보았었으니까. 아니, 명확하게 말하자면 지구를 그리워한 사람이 함선에서 지구로 내쫓기는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만 했으니까. 아마시로는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다. 그럴 거 같아서 말한 거뿐이야. 아마시로는 벽을 바라본다. 그는 지금 축사나 농장의 일을 맡기 전, 했었던 일을 떠올린다. 그것은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함선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모니터에서는 작은 소형 우주선이 함선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안내문장이 띄워지곤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키리미치의 손을 잡는다. 미적지근한 온기에 잊고 있던 불안이 오히려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그래?”

“그냥.”

“추워?”

“추워도 뭐 어쩌겠어. 중앙난방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담요는 덮을 수 있지.”

“됐어. 괜찮아. 너 덮어. 방이 좀 춥네.”

침대에 있는 담요를 끌어와 키리미치의 어깨에 둘러준다. 키리미치는 그 담요에 뺨을 비비며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고마워, 사다시. 그의 팔에 손을 얹는다. 저렇게 유약한 것이 우주에 떨어지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외로워서 죽을지도 모르지. 우주는 드넓고, 고독을 짓씹기 좋은 곳인데. 행성이라곤 아무것도 없는걸. 운 좋게 다른 함선에 가더라도 잡일만 하며 힘들게 살아가다가 생을 끝맺게 되겠지. 죽을 때에 빛나는 행성처럼 반짝이지도 못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어 그 속을 떠다니는 먼지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시로는 축사에서 처음 마주친 키리미치가 걱정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유순한 미소, 순진한 건지 순수한 건지 쉬이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을 입밖에 내면서도 눈치 하나 보지 않는 모습. 어떠한 생각도 없이 주어진 일이라 치부하며 소형 우주선을 날려 보내던 자신과 키리미치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래서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키리미치가 우주의 먼지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서 이름도 모르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 중 하나가 되지 않았으면 해서.

“토오루. 이제 지구 보는 건 끝이야. 일하러 가자.”

“벌써~?”

“벌써라니.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늘치 할당량을 끝내지 못하게 될 거야.”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키리미치의 손에 들려있던 사진과 상자를 빼내고 뚜껑을 덮는다. 단호하게 끊어낸 것과는 다르게 막상 빼앗아 가니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억지로라도 쥐여줘서 방에서 만족할 때까지 보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매번 이렇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건, 타인의 눈에 띄기 쉬웠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 보잘것없는 과거의 일면을 보겠다며 제 방으로 오는 키리미치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시로는 그의 속에서 교차하는 모순과 욕망을 잊어내기 위해 상자를 책상 어딘가에 던지듯 내려두고선 방의 문을 연다. 인공적인 빛이 문 틈새로 들어와 아마시로의 발등에 묻어난다. 키리미치는 그를 따라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간다. 농장 일은 축사에서 해야 하는 일보다 더 재미가 없는 거 같아. 지루하다고 해야 하나.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문이 잘 닫혔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그의 옆에 섰다.

“일 다 끝나면 저녁 먹으러 가자. 오늘 저녁에는 오렌지 한 조각 준대.”

“오렌지!? 웬일이래?”

“수확량이 좀 늘었다던데.”

“와아~. 신난다!”

“내 몫도 토오루가 먹을래?”

“응? 왜? 사다시가 받은 건, 사다시가 먹어. 언제 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오렌지 별로 안 좋아해.”

“그렇다면 편식하는 사다시를 위해서 내가 또 먹어주는 수밖에 없겠네!”

저걸 또 순순히 믿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키리미치는 그 말 한 마디에 신이 난 건지 가사가 없고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음을 흥얼대며 농장 구역을 향해 걸어간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넉살 좋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까지 한다. 고작 오렌지 한 조각에 저렇게 기분이 좋아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시로는 키리미치가 저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와 자신의 차이를 절절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켜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저 바보 같은 순수함을. 때 묻지 않은 성격을.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자신에게 닿는 시선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훑는다.

“천천히 걸어. 토오루. 그러다가 넘어져.”

“괜찮아, 안 넘어져. 절대!”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뒷모습을 눈에 담는다. 모든 것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이는 착각일 지도 모르겠지만, 키리미치의 말을 듣고 행동을 지켜보면 함선에서 떨어져 나가던 소형 우주선들이 떠오르곤 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단언컨대 키리미치는 혼자 우주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운 좋게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하여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했다. 외롭겠지. 아니, 외롭다 못해 고독하겠지. 키리미치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시로는 걸음을 조금 빨리 해 키리미치를 따라잡는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이어지고 싶다는 듯이 어쩌면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손을 키리미치는 자연스럽게 맞잡았다. 농장 구역에 다다랐을 때, 함선이 작게 흔들렸다. 소음에 가까운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함선 수리하고 있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생각보다 소음이 되게 크구나. 함선 수리하는 분들 다 고생하시겠네.”

입술을 달싹인다. 아니야, 토오루. 생각보다 고생하는 건 없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거든.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중 뱉어낼 수 있는 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본래 같은 구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업무에 관해 묻거나 말하는 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키리미치는, 키리미치만큼은 이 함선에서 벌어지는 일을 몰랐으면 했다. 가능한 오랜 시간 동안, 변화는 잦으나 영원히 존재할 우주 속에서도 더더욱 영원하길 바랐다. 그는 키리미치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러게. 그러니까, 함선 수리를 하는 일로 빠지고 싶단 말은 하지 마. 위험해. 그거. 아마시로는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소행성과 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우주선이 드넓은 어둠 속을 떠다니고 있다. 저 안에는 함선에서 내쫓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구를 동경하고 지구에 가고 싶다고 건의를 했거나, 그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오랜 시간 무시하고 방치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항상 다양했고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했다. 아마시로의 걸음이 점차 느려진다. 그는 광활한 우주를 눈에 담는다. 지구 또한 이럴까? 문득 든 의문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키리미치에게 좋지 않은 버릇이 옮은 걸지도 모른다. 고쳐야 할 버릇은 여전히 많은데, 거기에 하나 더 늘어나고 말았다. 골이 지끈거렸다. 아마시로가 걸음을 멈추자 키리미치는 그의 속도 모르고 실실 웃으며 그의 주변을 맴돈다. 역시 사다시도 별에 이름 붙이기 하고 싶어? 하다가 갈까? 철없고, 속없는 말에 아마시로는 입을 떼어낸다.

“눈에 띄는 별이라도 있어?”

마음과 달리 말이 매끄럽게 새어나온다. 멍청한 개체. 멍청한 아마시로 사다시. 속으로 자책 아닌 자책을 하고 있을 때, 키리미치는 낮게 소리를 내어 웃는다.

“저거. 색이 사다시 같아.”

색 짙은 남색이 미약하게 반짝이고 있다. 저것은 곧 죽을 행성이다. 죽음을 앞둔 것이 나를 닮았다니.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아마시로는 키리미치가 말한 행성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남색의 빛이 어린것만 같다. 그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걸음을 떼어낸다. 얇은 전선처럼 길지만 복잡한 복도를 걷는다. 꽤 오랜 시간 말없이 있던 아마시로는 말한다. 이름, 지어줘. 네가 아는 것 중에 제일 괜찮은 거로. 아마시로의 말은 키리미치에게 닿은 뒤, 본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금방 휘발되었다. 키리미치는 실없이, 헤프게 웃었다.

 

 

 

 

여기는 유성 S-11.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는 유성 S-11.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는 유성 S-11……. 대답이라도 해줘. 부탁해. 제발.

아마시로가 우주는 공허하고, 고독하고, 당연히 외로운 장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따금 소형 우주선에서 보내진 무선의 탓이 컸다. 그들은 운이 좋으면 다른 행성이나 함선에 맞닿아 살 수 있었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죽었다. 그들은 꼭 죽기 전,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무선에 연신 말을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와 우울에 점철된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함선에서의 삶이 훨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사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아마시로는 키리미치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힘들었지만, 축사와 농장 일로 재배정 받기 전의 아마시로는 혼자서도 멀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아마시로는 무전이나 녹음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확인하고, 삭제하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전임자가 우울증에 걸려 목을 매었기 때문이었다. 시체를 치우며 관리자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한숨을 푹푹 내뱉어댔다. 아마시로는 하나의 촌극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근래 들어 아마시로는 소형 우주선이 함선에서 떨어져 나와 목적지 없이 날아가는 것을 볼 때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토오루. 너도 외로울 때가 있어?”

상념에 잠겨있던 남자는 동물의 배설물을 흙에 뿌려가며 물었다. 그것은 충동에 가까웠다. 괜히 말했나. 뒤늦은 후회에 아랫입술을 흰 이로 씹어댄다. 다행히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질문이 단순한 함선에서의 삶을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외롭냐구? 배설물은 농작물의 뿌리가 닿아있는 흙에 흩뿌려진다. 키리미치는 손을 멈추진 않았다. 한참 농땡이를 부린 탓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것 같았는지 평소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아마시로는 그에 비해서 느긋하게 거름을 뿌리고 농작물의 상태를 중간중간 확인했다.

“외롭진 않은데? 사다시랑 같이 있으니까!”

“같이 자는 건 아니잖아. 그럴 때는 외로워?”

“아니? 어차피 사다시랑 내일 만날 테니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아, 빨리 헤어진 게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빨리 헤어지긴. 맨날 취침 시간 전까지 있다가 헤어지는데.”

“다음에는 내가 몰래 사다시 방으로 가서 같이 잘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토오루.”

“아쉬움을 참지 못한 나의 제안이라 생각해줘.”

“거기 거름 덜 뿌렸어.”

“어, 진짜!? 어디!?”

키리미치가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가 아마시로가 말해준 곳을 발견하곤 황급히 배설물을 더 퍼 뿌리기 시작한다. 아마시로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잘 자라난 오렌지의 크기를 가늠한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가 자신을 보든 말든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던 일을 이어 나갔다. 농장 구역에 정적이 내려앉을 일은 없었다. 키리미치의 목소리 탓도 있었으나, 농장 구역이 너무나 드넓은 탓에 사람도 많은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아스라이 멀리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귓등을 간질인다. 아마시로는 축사와 농장으로 재배정받은 것에 어떠한 생각도 없는 편이었으나, 소음이 심할 때면 차라리 이전이 나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다시!”

키리미치는 거름통을 옆구리에 낀 채로 아마시로를 내려본다. 아마시로는 고개를 들어 키리미치에게 시선을 두었다. 높은 곳에 달린 빛이 눈을 찌른다. 자연스럽게 미간이 찡그려진다.

“일은 다 했어?”

“거름 뿌리는 일까지 하느냐 정신이 없었어~.”

“칼이 고맙다고 할 거야.”

“그건 당연한 거구! 오늘 칼의 오렌지는 내꺼야.”

“내꺼도 먹어.”

아마시로는 일을 얼추 마무리한 뒤에야 구부정하던 허리를 쭉 폈다.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입술 틈새로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키리미치는 키득거린다. 사다시, 노년기를 맞이한 사람처럼 굴어. 왜~. 장난스레 건네는 말에 아마시로가 눈을 깜빡인다. 노년기의 사람처럼 보이면 네가 업고 가줄래, 토오루? 장난이라는 단어와 그것에서 시작된 행동을 모르는 것처럼 구는 아마시로는 아주 자연스레 대답한다. 그러자 키리미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러워진 손을 대충 닦아내며 그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빨리 옷 갈아입고, 저녁 먹으러 가자!”

“오렌지가 배급된다니까 신났지, 너.”

“당연하지! 얼마 만에 과일이야.”

“한 달 정도?”

“한 달이면 엄청 오래됐네.”

“옛날에는 두 달에 한 번이었잖아.”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랜만에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고무로 만들어진 장화를 벗고서 깨끗한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몸에서는 가축의 배설물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소독실로 가면 좀 나으려나. 아니면 시간이 지나야 빠지려나. 아마시로는 제 옷에 코를 가까이하고 킁킁댄다. 키리미치는 옷에 밴 냄새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건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아니라 단순히 오늘 저녁에 배급될 오렌지에 정신이 팔린 걸지도 모르겠다.

“오렌지가 너무 기대돼.”

“맛은 항상 똑같잖아.”

“자주 못 먹는 거니까 기대되는 거지.”

식당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대화라기보단 키리미치가 일방적으로 말을 꺼내고, 재잘대면 아마시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짤막하게 대답해주는 게 전부였다. 말을 이어가다가 들뜬 나머지 말하면 안될 것을 말할 거 같으면 의도적으로 주제를 돌리거나, 부러 멈춰 서며 대화를 끊어냈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가 그 행동에 의문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 다 끝내고 온 모양이네?”

“칼~. 내가 네 일 대신 해줬어. 오렌지 줘!”

“무슨 맡겨둔 것처럼…… 단백질 바는 줄 수 있는데, 오렌지는 못 주지.”

“역시 그렇지?”

“당연하지. 얼마 만에 오렌지인데. 어?”

칼은 장난스레 웃는다. 그의 손에는 식판이 들려있다. 오트밀 죽, 단백질 바. 그리고 오렌지 한 조각. 단출하기 짝이 없는 식판에도 사람들은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다. 고작 오렌지 하나에 저렇게 웃는 사람들이 아마시로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칼과 떠드는 키리미치를 힐끗 보다가 식판을 손에 들었다. 배식구로 걸어가 식판을 내민다. 배식 담당원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고생했다고 말을 건넨다. 뭘 고생했다고 하는 걸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인 건데.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아마시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만 엉성하게 끄덕이며 발을 옮기길 반복했다. 오렌지까지 다 받은 아마시로는 자리를 잡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은 곳에서 단둘이 앉는 건 시선을 받으니 곤란했다.

“저기 앉자.”

결국 아마시로는 겉도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식탁을 가리킨다. 키리미치는 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양옆에 나란히 앉았다. 아마시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키리미치의 식판에 제 몫의 오렌지 한 조각을 올려주었고, 키리미치는 생글생글 웃으며 단백질 바의 포장을 찢어냈다. 키리미치는 오트밀 죽을 떠먹기 위해 수저를 손에 쥔다. 손을 느리게 움직이며 딸기 맛 오트밀 죽을 퍼 입에 넣는다. 질척거리는 식감이 영 별로였다. 인공적인 딸기 맛은 식감과 어울리지도 않았기에 아마시로는 맛을 느끼기보다는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보급과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백질 바는 무슨 맛이야?”

“이거…… 감초 사탕 맛.”

“먹을 수나 있는 맛이야, 그거?”

“먹을 만은 해. 음, 가끔 먹으면 나쁘지는 않지 않아?”

“항상 나빠. 항상.”

오트밀 죽을 반 정도 먹었을 때, 아마시로는 단백질 바의 포장을 뜯고 끄트머리를 베어 물었다. 씁쓸한 감초사탕 맛이 혀 위에 감돈다. 먹을 거라곤 오렌지 한 조각밖에 없었지만, 그 한 조각 마저 키리미치에게 준 아마시로는 내키지 않더라도 배식받은 음식을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 오렌지 나무가 있을까?”

“가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지.”

“오렌지는 나무에서 자라는 거래.”

“나무에서 자라는 게 맞아. 봤었잖아. 토오루.”

“지구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도 똑같을까?”

아마시로는 단백질 바를 식판에 내려두었다. 토오루, 우선 먹고 얘기하자. 키리미치의 말을 끊자 그는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인다. 왜? 순진하기 짝이 없는 그 물음에 아마시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이 많으니까. 가본 적도 지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위험분자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다는 걸 아마시로는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키리미치의 입을 막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알았어. 다 먹고 방에 가서 이야기해~. 꼭! 약속이야?”

“약속할게.”

“막 핑계 대면서 돌려보낼 거지?”

“내 방으로 오게? 재미없잖아.”

“엄청 재미있는데. 사다시만 모르는 거야.”

그는 아마시로의 바람대로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음식을 섭취할 때에만 얇은 입술을 벌리고, 닫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오렌지를 씹을 때면 환하게 웃는다. 발갛게 물든 볼이 퍽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마시로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소리라곤 음식물을 씹을 때 나는 소리와 식판에 수저나 포크가 닿는 소리뿐이었다. 아마시로는 작은 소음이 잘라내는 정적과 입에 머금은 침묵이 꽤 달갑게 느껴졌다. 키리미치가 만들어내는 말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위험에 처할 바에는, 저 차디 찬 우주에 내던져질 바에는 차라리 함선인들처럼 입을 닫은 채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에 아마시로는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내리눌렀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품은 듯한 기분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낀다. 함선인들을 우주로 내보내는 버튼을 눌렀을 때도, 전달된 무선과 그의 기록을 열람했을 때도, 그것을 폐기했을 때조차 느끼지 않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그리고 덧없이 낯설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적당한 길이의 손톱이 손바닥에 닿는다.

“왜 그래, 사다시?”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더 나아가 아마시로라는 개체를 이해할 수 없는 개체였기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아마시로에게 선뜻 말을 건넨다. 만약에 키리미치가 지금 자신이 한 생각을 알게 되었을 때도, 나에게 쉬이 말을 걸 수 있었을까? 아니, 생각을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그가 만나기 이전에 키리미치가 하던 업무를 알게 되어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줄까? 아니겠지. 아닐 게 분명했다. 혐오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무의 속살처럼 뽀얀 듯한 그의 앞에만 서면 아마시로는 그 자신이 한없이 추잡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피곤한가봐.”

“그래? 그러면 좀 서둘러서 먹을게. 빨리 가서 쉬자!”

“천천히 먹어도 돼. 어차피, 휴식 시간이잖아.”

“식당에서 이러고 있는 것보단 방에서 쉬는 게 낫잖아~.”

능청스레 말하는 키리미치를 보던 아마시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 행동을 키리미치는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지 수저를 더 빨리 움직인다. 아껴먹을 거라고 말하던 오렌지를 단번에 입에 넣는다. 우적우적 씹으며, 아마시로가 주었던 오렌지 조각을 그의 입에 넣어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마시로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씹지도, 삼키지도, 그렇다고 뱉어내지도 못한 채로 서 있자 키리미치는 작게 키득거린다. 달라고 했던 거, 장난이야. 사다시 먹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 무해하기 짝이 없다. 키리미치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을 때쯤에야 아마시로는 입안으로 들어온 오렌지를 아주 느리게 씹기 시작했다. 작은 과육이 이에 짓눌린다. 과즙이 터져 나오며 혀를 적신다. 시고, 달고, 쌉쌀하기도 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맛과는 다른 자연의 맛에 아마시로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곧 표정을 지워낸다. 손을 뻗어 키리미치의 손을 잡는다.

“오렌지 되게 맛있지 않았어?”

“내껀 덜 익었나 봐.”

“내가 그거 먹을 걸 그랬네.”

“됐어.”

함선 속 사람들은 식당에서 나오거나 들어가고 있다.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길고 넓은 복도를 과거에는 존재했을 어떤 것처럼 유영한다. 그러면서도 손은 놓지 않았다. 아마시로는 이미 버릇처럼 굳어진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다만 그게 쉬이 고쳐지는 것이었더라면 버릇으로 굳어지지 않았을 걸 알고 있기에 키리미치의 온기가 손바닥에 묻어날 때면 저도 모르게 입안의 여린 살을 살짝 이로 씹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마시로가 키리미치의 손을 잡을 때면 키리미치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손을 맞잡았다. 물맞댐을 하듯 뜸을 들이고 신중하게 구는 그게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어떨 때는 키리미치가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져서 달갑다 못해 저열한 쾌감까지 느껴졌다. 둘은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로 다시 아마시로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서 할 것은 없었다. 키스를 할 수도 없었고, 서로의 몸을 더듬지도 못했다. 더 나아가 몸을 섞는 일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랑과 그에 따른 행위는 함선에 있는 관리자들에 의해 정해졌기에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고작 손을 잡거나 포옹하며 온기를 나누는 행위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거기까지가 허용되는 범위였으니까.

“오늘은 사다시 방에서 자도 돼?”

“그건 안 돼.”

“치사해~.”

“네가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관리자가 보면 곤란해지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내 잠버릇이 심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

“토오루의 잠버릇이 조금 심하긴 하지.”

“그럴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잠버릇이 안 심하다고 말해줘야지!”

“이런 건 솔직히 말해줘야 알지.”

아마시로의 말에 키리미치는 볼을 살짝 부풀린다. 그는 얼굴을 힐긋 보다가 방의 문을 열었다. 벽면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른다. 인공적인 빛이 방 안을 내리쬔다. 저것은 아마시로와 키리미치의 작은 태양처럼 존재할 것이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문을 닫았다. 키리미치는 책상에 걸터앉고서 발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침대가 더러워지잖아. 내려와. 아마시로의 말에 키리미치는 장난스레 웃으며 아예 침대에 누워버린다. 이제 사다시 침대에선 농장 구역에서 나는 냄새가 날걸.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나 키리미치를 억지로 일으키지는 않았다. 대신에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본다.

“장난치지 말고.”

“힘들어서 눕고 싶어!”

“그러면 방으로 가서 쉬어.”

“그건 또 싫어.”

대체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얕은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떼어낸다. 이불이라도 덮고 있어. 잠들지는 말고. 나긋한 어투에 키리미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몸을 뒤척이면서도 보드라운 천에 뺨을 비벼댄다. 사다시가 쓰는 이불은 유독 천이 안 거친 거 같아. 내꺼는 엄청 꺼끌거리는데. 피로했던 건지, 잠이 몰려오는 건지 뭉개진 발음으로 느리지만 끊어지는 부분 없이 완성된 말에 아마시로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내 방으로 자주 오니까, 뭐라고 해도 매번 침대에 눕곤 하니까.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중에 딱 하루 주어지는 휴일에 저 무거운 이불을 안아 올린 채로 세탁방에 가서……. 생각이 길어질수록 입술이 서로 맞닿는다. 뱉어낼 수 없는 말이 속에 켜켜이 쌓여간다.

“나는 보급받았을 때, 제일 좋은 거로 가져오니까.”

“나도 사다시가 가져오는 거 가져올걸~.”

“토오루는 귀찮다고 보지도 않고 제일 위에 있는 걸 들고 갔었잖아.”

“그랬던가?”

“그랬었어.”

키리미치가 상체를 일으킨다. 기지개를 쭉 켜고서 얕게 하품한다. 내일, 우리…… 짝이 정해지는 날이잖아. 솔직히 이해가 안돼. 어차피 아이는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짝을 정하는 이유가……. 키리미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마시로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마시로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것을 생각하는지 키리미치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봐왔던 아마시로의 모습 중 지금이 가장 불안해 보였다. 굳게 닫힌 문을 몇 번이나 힐끗거리질 않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키리미치의 몸을 살핀다. 왜 그래. 사다시. 미적지근한 불안이 속에 차오른다. 입술의 끄트머리를 겨우 올려 웃는다. 함선 내에서 느껴본 적이 없는 불안함을 잊어내기 위함이었다. 키리미치의 물음에도 아마시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닫고 육안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손을 뗀다.

“왜 그러냐니까. 사다시~.”

“……장난 좀 쳤어.”

“이런 장난은 별로인 거 같아.”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본 뒤에야 아마시로는 안도할 수 있었다. 키리미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위험하다. 아마시로는 관리직에 속해 있었으나, 그들이 어떻게 사람을 선별하는지 알지는 못했기에 어떤 행동이, 어떤 말이 더 나아가 무엇이 위험한지조차 알지 못했다. 무지가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었다가 편다. 손바닥은 피부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에 의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마시로는 땀을 바지에 닦아낸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키리미치의 옆에 앉았다. 싫어도 좀만 참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다, 뜻이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편해. 아주 어린 개체를 타이르듯 조곤조곤 말한다. 키리미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것밖에 없었다. 납득할 만한 마땅한 이유도 없이 그저 이해하라는 말이 키리미치에겐 답답할 것을 알면서도 아마시로는 부디 그가 더 의문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싫은데 참아야 해?”

이해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키리미치가 아니었다. 아마시로는 그래서 키리미치에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일 수 없어도, 납득할 수 없어도 그것이 규칙이라면 어기지 않고 살아가려는 아마시로와 달리 키리미치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기에 불안했다.

“어려워?”

“응. 어려워.”

“한 번만 참아, 토오루.”

“그게 싫은 거야. 답답하잖아!”

“너랑 잘 맞는 사람이 네 짝이 될 수도 있잖아.”

“나랑 잘 맞는 사람은 사다시인걸.”

“나보다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

“없을 거 같은데. 아니? 없어!”

“토오루. 제발.”

한 번만. 덧붙인 말에 키리미치의 미소가 서서히 지워진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관리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인류 최후의 구원이라는 함선 속에서 평온하고 안온하게 자란 키리미치가 아마시로가 입에 머금고 사는 현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아마시로는 그가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를 식도 뒤로 삼키는 게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부탁이야. 그는 키리미치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잘 내뱉지 않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키리미치는 고개를 살짝 떨군다. 고민하고 있는 건지 입술을 오물거릴 뿐, 쉬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고민하다가 키리미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넓은 듯하면서도 좁고, 좁은 듯하면서도 넓은 둥근 어깨를 느리게 쓸어준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달가운 것처럼, 정적이 가장 친밀한 친우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야 얇은 유리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위태로운 관계를 지킬 수 있을 듯했다.

“……그러면 내일 같이 있어.”

“항상 같이 있잖아.”

“무슨 뜻인지 알면서.”

“그거면 돼?”

“그거면 될 거 같아.”

“그래. 알겠어.”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손을 떨쳐내지 않았다. 대신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는 듯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데려다줘? 그러자 키리미치가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근처인데, 뭐. 사다시도 피곤할 텐데 방에서 쉬어. 혼자 갈 수 있어. 망막에 키리미치의 등이 맺힌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에 넘실거린다. 그 아래로 보이는 피부는 마냥 희다. 키리미치를 바라볼 때면 온갖 유약한 것들이 떠오르곤 했다. 아마시로는 그랬다. 씨를 막 뿌려 땅에서 돋아난 새싹. 줄기의 끄트머리에 맺힌 꽃몽우리.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흔들리는 얇은 줄기……. 손을 뻗는다. 키리미치의 손이나 손목 따위를 잡으려다가 관둔다. 아마시로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조심히 돌아가, 토오루. 급하게 가다가 넘어지지 말고. 아무렇지 않게 작별의 말을 혀 위에 올린다. 길게 느껴지기도 어떨 때는 짧게 느껴지기도 하는 하루의 끝을 고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애도 아니구. 괜찮아~. 매번 그렇게 말 안 해줘도 돼.”

“며칠 전에 급하게 나오느냐 복도 벽에 부딪혔었잖아.”

“그건 며칠 전이고! 오늘이랑은 다르지!”

“뭐가 달라.”

“날이 지나면 다 다른 거야.”

투덜거리며 방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다. 조심히 돌아가. 문에 기댄 채로 말하자 키리미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잔소리 그만해. 그만!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다가 곧 눈을 살짝 접어 웃는다. 내일 봐, 사다시. 작별의 말을 내뱉고서 다시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간다. 아마시로는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점이 되어 이윽고 사라질 때까지 홀로 서 있었다. 벽면에 규칙적으로 붙어있는 취침 시간 안내 방송이 나올 때쯤에야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적막하기 짝이 없는 방이 어딘가 허전해 보인다. 그는 괜히 방을 한 번 둘러보다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키리미치가 누웠던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는 농장에서 맡을 수 있는 거름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 싱그러운 풀 냄새가 뒤섞여있다. 그 냄새를 가만히 맡고 있으면 뒤섞인 냄새 속에서 키리미치의 향이 느껴졌다. 같은 샴푸를 쓰고, 같은 비누를 쓰고, 같은 로션을 쓰는데 왜 너한테선 나랑 조금 다른 냄새가 나는 거 같을까. 아마시로의 눈이 느리게 감긴다. 키리미치의 짝이 될 여자에게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의 향기가 나게 되는 걸까? 시간이 지나 노화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서 추출된 유전자로 만들어진 개체에선 그와 같은 향이 날까? 네게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것은 그 무엇이든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서툴고, 아무리 엉성해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을 것만 같은데…… 매트리스 위에 깔린 희고 얇은 천에 주름이 진다. 손바닥에 닿는 천의 감촉이 한없이 보드랍다.

내일, 키리미치의 짝이 될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유전자를 받고, 어떤 외형을 하고 있을까. 성격은 어떨까. 키리미치는 무척이나 다정하고 유순했지만, 허술한 성격이었기에 그처럼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이면 좋으련만. 아마시로는 알지도 못하는 키리미치의 짝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침 시간이 되자 불이 소등되었음에도 옷도 갈아입지 않고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키리미치에게 짝이 생기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따윈 없겠지. 걔는 상냥하니까. 제 짝이 될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굴 테니까. 이따금 장난도 치면서, 그리도 좋아하는 우주의 풍경을 보며 지구에 대해 떠들겠지. 그 옆에 아마시로는 없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키리미치의 옆을 지키던 아마시로 대신에 얼굴도 모르는 그의 짝이 자리하게 될 게 분명했다. 아마시로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망막 위로 우주의 어둠보다 더 깊고 끈적이는 색이 내려앉았다가 사라진다.

“옆에는 내가 없겠지.”

당연한 사실을 몇 번이나 곱씹는다. 짝이 정해지면 방이 재배치되고, 업무 또한 변경된다. 그 짝을 영원히 사랑하라는 듯.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인공적인 사랑을 피어나가게 만든다. 키리미치뿐만이 아니라 아마시로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는 함선 속에서 만들어진 뒤로 처음으로 씻지도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완전히 눈을 감았다. 키리미치의 향이 담뿍 묻어난 이불에 얼굴을 파묻는다. 토오루. 사실 나는 짝이 정해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어. 그 누구의 소망도 없이 정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축사 안에서 일평생을 살아가는 가축과 같은 삶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키리미치가 이런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해하고 싶은 것은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걸까. 아마시로에게 주어진 짤막한 삶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고, 주어진 교류라곤 같은 일을 하는 관리직이나 키리미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결핍되어 있다. 많은 것이 있고, 부족함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결핍된 이 함선처럼…….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걸 의심하고 부정하게 될지도 모르는 불경한 생각을 지워낸다. 대신에 한 이름을 입 밖으로 낸다. 토오루. 키리미치, 토오루.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진 개체의 이름을 몇 번이나 읊조린다. 그게 많은 것이 변하는 삶 속에서도 유일하게 변치 않는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해서. 변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옆에 있게 될 사람이 부디 그처럼 다정하길 바랄 뿐이었다. 다정하고, 하지만 어떨 때는 또 단호하고. 그런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아마시로 또한 마찬가지로 키리미치와 함께 내일 짝을 지정받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제짝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감정에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 그래도 토오루, 난 네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좋겠어. 아이들에게 보급되던 달콤한 사랑 이야기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완벽한 모형 정원 속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사랑을 나누는 것이 우스운 촌극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마시로는 손목을 눈 위에 얹는다. 속눈썹이 부드러운 피부를 간질인다. 그는 최대한 그 감촉과 이불에 묻어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옅어진 키리미치의 냄새에 신경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야만 이미 뇌에 인이 박여버린 생각을 지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보다 활기찬 아침이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누가 자신의 짝이 될지 떠들었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 입술, 휘어진 눈매, 그 사이로 사그라든 다양한 색의 눈동자. 키리미치와 아마시로는 가장 뒤편에 서서 뒷짐 진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들 신났나 봐. 키리미치의 말에 아마시로는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신날 만했다. 대부분의 함선 속 사람들은 제 짝이 정해지는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곤 했으니까. 이곳에서 들뜨지 않은 것은 오로지 키리미치와 아마시로밖에 없는 듯했다.

“그러게.”

“사다시는 기대 안 돼?”

“별로. 짝이 생겨도 평소랑 똑같을 거 같은데. 나는.”

“그렇구나. 아, 짝은 여성개체랑 남성개체로 이루어지는 거였지?”

“응. 보통은 그렇지.”

유사시 생식이 가능한 개체끼리 묶어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의 말에 키리미치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인다. ……역시 그렇겠지.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에 의문을 품었으나 그것도 찰나였다. 단상에 관리직에 속한 이안이 서자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이안은 그들을 훑어보다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 시선을 두었다. 그의 입에 서서히 벌어진다. 아마시로의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게 단상 위로 향했다. 동시에 키리미치는 손을 아래로 내린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닿는다. 그것은 아마시로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더니 곧 손등에 닿는다. 그는 어딘가 부족한 백치처럼, 함선 속 삶에 지쳐 우울증에 걸린 불쌍한 개체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미적지근한 온기가 한없이 익숙하다. 그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낯설었으면 하는 것이기도 했다.

“왜 그래. 토오루.”

“이러고 있으면 안 돼?”

타인에게 들리지 않되 서로에겐 닿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아마시로는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맞잡지도 못했다. 키리미치도 손을 맞잡기 전에 이런 고민을 했었을까? 한참 말을 고르던 아마시로는 결국 키리미치의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체온이 맞닿는다. 아마시로는 온기를 느끼며 이안이나 다른 관리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손을 뒤로 끌었다. 키리미치는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고서 순순히 아마시로를 따라 움직였다. 관리자들은 수많은 사람들 틈새를 돌아다니며 흰 종이봉투를 그들에게 건넨다.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는 뒤편에 서 있는 탓에 가장 마지막에 받아야 했다. 맞잡지 않은 손으로 봉투를 쥔다. 꺼끌꺼끌한 봉투를 검지와 엄지로 매만진다.

“봉투 안에는 여러분들의 운명이 될 상대의 이름이 적혀있으니…….”

이안이 말을 이어간다. 거창한 단어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절차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시로는 마냥 흰 봉투를 내려본다. 키리미치 또한 봉투를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들뜬 표정으로 봉투를 뜯거나 찢어 안에 든 종이를 펼치고 있다. 오로지 아마시로와 키리미치만이 봉투를 뜯지 않은 채로 있었다.

“사다시. 사다시 방에 가서 뜯어봐도 돼?”

“……그러고 싶어?”

“응. 그러고 싶어.”

“그래. 그러자.”

소리없이 문을 연다. 연회장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업무를 하고 있었기에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을 옮긴다. 신발의 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그 불규칙한 소리가 복도에 내려앉은 정적을 아주 부드러이 살라내고 있었다. 궁금했던 거 아니었어? 아마시로가 묻자 키리미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궁금하긴 해. 궁금하긴 했는데……. 말을 쉽게 잇지 못한다. 그는 흰 이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내리눌렀다가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인다. 몰라. 그냥, 같이 열어보고 싶어. 둘이서. 띄엄띄엄 내뱉은 말이 어딘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마시로는 말없이 걸음을 더 빨리 할 뿐이었다. 키리미치는 그와 손을 맞잡은 채로 덩달아 보폭을 넓게 해야만 했다. 함선 속에서 도망칠만한 곳은 그 어디도 없는데도 둘은 마치 어딘가로 도망가는 사람처럼 걸었다. 어쩌면 타인이 보았을 때, 뛰는 것처럼 비추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숨이 가빠지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타인의 시선을 피해 어딘가로 향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사다시, 사다시. 걸음이 너무 빨라. 사다시이.”

“……아, 미안해. 천천히 걸을게.”

“미안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고.”

말과 달리 아마시로의 걸음은 느려질 기미가 없었다. 키리미치는 제 손을 잡은 채로 걷는 남자의 걸음이 빠르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다시 말을 꺼내진 않았다. 아마시로는 방에 다다랐을 때야 걸음을 멈췄다. 급하게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간다. 불이 켜진다. 죽은 유성에서 나오는 듯한 빛이 둘에게 내려앉았다. 키리미치는 침대에 걸터앉지 않았다. 문을 등지고 서서 마른침을 삼킨다. 그의 손에는 어딘가 유서처럼 느껴지는 통지서가 들려있다. 그는 그걸 열지도, 그렇다고 내버리지도 못한 채로 봉투를 내려보고만 있었다.

“대신 봐줄까, 토오루?”

“그래도 돼?”

“안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여긴 너랑 나 둘뿐인데.”

키리미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봉투를 건넨다. 아마시로는 그것을 받아들고 끄트머리를 찢어낸다. 종이가 찢어지며 작은 소리가 났다. 키리미치도, 아마시로도 그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봉투 속에 있던 종이를 꺼낸다. 정확히 반으로 접힌 종이를 보며 키리미치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떤 이름이 적혀 있을까. 그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구는 아마시로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이왕 적혀 있다면 저 하얀 종이에 아마시로 사다시, 라는 이름이 공통어로 적혀 있었으면 했다. 종이를 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펼친다. 너무 급하지도, 너무 뜸을 들이지도 않는 모습에 키리미치는 손을 쥐락펴락했다.

“……에이미네.”

“에이미?”

“응. 토오루가 봐.”

완전히 펼쳐진 종이를 키리미치의 손에 쥐여준다. 마치, 직접 확인하라는 듯이. 키리미치는 종이를 쥔 채로 시선을 아마시로에게 두었다. 에이미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짝이 정해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인데. 거스를 수 없는 순리와 같은 것인데. 회피할 수도 없고, 거부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으며,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왜 나는, 이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보고 싶지 않은 걸까. 구김 하나 없던 종이가 키리미치의 손에 의해 형태를 잃어간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마시로는 그걸 말없이 지켜보았다.

“싫어.”

“뭐가?”

“보기, 싫어.”

“토오루. 싫어도 봐야지.”

“싫어. 안 볼래.”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는 모습이 아마시로는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억지로 들이밀어 이름을 보여준다고 한들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아이를 돌봐본 적도 없고, 아이와 가까이 있어 본 적도 없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어른이라 불리어도 될 정도로 성숙하던 부류들만 존재했기에 이런 걸까. 확언할 수는 없으나, 아닐 것이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키리미치였으니까. 아마시로 사다시라는 개체는 키리미치 토오루라는 개체에 유독 약했고, 키리미치라면 조금은 물러졌으며, 그렇기에 유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체를 숙여 바닥을 나뒹구는 구겨진 종이를 주워들었다. 얇은 피부를 간질이는 종이의 감촉이 한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아마시로는 부디 그것이 본인의 착각이거나 기분 탓이길 바랐다.

“이렇게 버리면 안 돼.”

“……사다시는 누구야?”

“안 봐서 모르겠어.”

“지금 보면 안 돼?”

“지금?”

“응, 지금.”

그는 결국 구겨진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제게 주어진 봉투를 뜯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마시로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어차피 정해진 것을 미뤄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종이가 찢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것이 손에 들린다. 키리미치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은 반으로 접힌 종이를 내려보던 남자는 그걸 펼친다. 종이는 무척이나 희었고, 유독 부드럽게 느껴졌다. 서서히 펼쳐진 종이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A도, 이도, た도. 성도, 이름도 적히지 않는 완벽한 백지에 아마시로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진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옆으로 걸어온다.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한숨처럼 웃음을 터트린다. 그 소리에는 즐거움이나 행복이 담겨있지 않았다. 허탈한 것 같기도 했고, 허망한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한 사람의 한숨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아마시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안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평생 함선에서 헌신하며 살아가라는 게 관리자들의 뜻인가 봐.”

나름대로 농담처럼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런데도 키리미치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표정에 아마시로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맞닿는다. 키리미치는 본인의 종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닥에 내버렸으면서 아마시로가 쥐고 있는 종이는 유심히 보고 있다. 계속 쳐다본다고 없던 이름이 생기지는 않아, 토오루.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결국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그래서 본 거 아니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아마시로의 고개가 옆으로 기운다. 그러면 왜 보고 있던 걸까. 순수한 의문이 속에 내려앉는다. 짝이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할 자신을 동정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부러움에 눈을 뗄 수 없던 걸까. 에이미라는 이름을 듣고 울 것처럼 미간을 찡그리던 키리미치였기에 부러움에 눈을 뗄 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토오루. 에이미는 성격이 좋잖아.”

“사다시. 혹시 내가 널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었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

키리미치가 입술을 달싹인다. 그는 답지 않게 한참 말을 고른다. 키리미치는 지금 주저하고 있다.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을 뱉어내야 하는 사람처럼,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을 품어버린 신도처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떼어낸다. 다행, 이라고 생각했어. 띄엄띄엄 내뱉은 말은 키리미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정하고, 마냥 해맑던 그가 품을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왜?”

“나도 몰라.”

“그러면 누가 알아, 토오루. 말해줘야 알지.”

“모르니까 말하기 싫었어.”

정말로. 네가 이 함선 속에서 혼자 살아가길 바란 건 아니야. 아마시로는 감히 키리미치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그런 것을 진심으로 바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애초에 그러길 바란다고 했어도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기에. 의심하는 것은 힘만 빠지는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짤막하게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오히려 더 입을 꾹 닫았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술을 비죽 내밀고 있는 게 금방 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였다. 울지는 말고. 뒤늦게 말을 덧붙인다. 그러자 키리미치가 아마시로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손에 쥔다.

“사다시는 아무렇지도 않아?”

“응.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로?”

“딱히 우울해할 이유는 없잖아. 짝이 없다고 내 삶이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이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

“그러면 내 짝이 에이미인 것도 아무렇지 않아?”

그의 물음에 입을 닫는다. 평소처럼 생각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해도 입술이 쉬이 벌어지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냐고? 왜 그걸 물어보는 걸까. 아마시로는 함선에 거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거스른 적이 없다는 것은 함선의 선택과 명령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키리미치의 짝이 에이미로 정해진 걸, 아마시로가 바꿀 수도 없었으며 더 나아가 그렇게 정해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이 인다. 아마시로는 처음으로 함선의 선택에 의문을 품어야 했다. 왜냐하면, 키리미치가 그러는 걸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는 먼저 에이미라는 여성 개체를 떠올리기로 했다. 어린 개체를 돌보는 보육장에서 근무하는 개체로 태생이 다정하고, 유순했다. 웃을 때면 볼에 폭 파이는 보조개가 사랑스럽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모도 준수하고, 어느 한 곳 모난 곳 없는…… 그녀는 그런 개체였다. 자신과는 사뭇 달랐다. 외모는 몰라도 어딘가 결핍된 성격이었기에 그는 자신보다는 에이미가 키리미치와 잘 어울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에이미가 싫어?”

“아니. 대화도 해본 적 없어.”

“소문은 나쁘지 않아. 외모도 꽤 준수한 편이래.”

“외모는 관심 없어.”

“성격 때문에 그래? 만나게 해줄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아마시로가 입을 다물자 키리미치는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다. 에이미든, 같은 구역에서 일하던 테일러든. 아유무든. 난 똑같이 굴었을 거야. 목소리에는 색 짙은 우울과 물기가 묻어있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와 시선을 맞춘다. 이유를 말해줘. 다정하진 않지만, 나긋하게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색이 다른 눈동자 속, 아마시로는 타인을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익숙하지 않았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다시였으면 했어.”

“네 짝이?”

“……응.”

“내 짝도 너였으면 했어?”

“응. 그래서, 사다시가 받은 종이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걸 보고…….”

나는, 난,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키리미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곧 아마시로의 시선을 피한다. 망막 위에 내려앉은 물막이 눈에 밟혔다. 아마시로는 손을 올려 그의 뺨을 감싼다. 울지 마. 무던하게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그의 뺨과 제 손을 적신다. 엄지로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준다. 굳은살이 박여 거친 피부가 피부를 쓰는 감각이 여실히 느껴질 때면 키리미치는 몸을 움찔거리곤 했다.

“……지구에 가고 싶어.”

키리미치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다. 지구에 가면 뭐든 괜찮아질 것처럼. 지구에 가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그렇게 믿고 싶다는 듯이 겨우 말을 내뱉는다. 토오루. 지구는 살 곳이 못 되는 거, 알잖아. 혀 위까지 기어 올라온 말을 겨우 삼켜낸다. 위액에 다 녹지 못한 문장의 파편이 위벽을 찔러댔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를 달래지도, 그렇다고 그에게 현실을 일깨워주지도 못했다. 아마시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키리미치는 힘없이 웃다가 아마시로의 품에 몸을 기댄다. 아마시로는 퍽 멍청한 표정으로 언뜻 보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내려보다가,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손길로 느리게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린 개체가 그의 손길을 느꼈더라면 금방 눈물을 터트렸을 정도로 서툴기 짝이 없었으나, 키리미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딱 그 정도가 좋았다. 익숙하지 않은 듯한 손길이 마치 키리미치가 아마시로의 유일한 예외이자 처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사다시는 여기가 좋아?”

“좋고,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함선이 모체처럼 느껴져?”

“토오루. 여기는 모체도 아니고, 나를 품어주는 어머니도 아니야.”

“그러면 뭐야?”

“……그냥, 살아가는 곳이야.”

태어났으니까. 만들어졌으니까. 그래서 살아가는 거야. 작게 난 창을 통해 보이는 우주는 광활하게 넓다. 저 넓은 우주 속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은 아마 없겠지. 아마시로는 어쩔 수 없이 함선에서 가르친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기가 나을 거야. 토오루. 함선 밖보다는 함선 안에서 살아가는 게 안전하고, 행복할 거야. 등을 토닥여주는 손이 점차 느려진다. 그는 실제로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알 수 없으며,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도 없는 곳에서 불안을 떠안고 살아갈 바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증스러운 평화 속에서 통제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거라 믿는다. 아마시로의 손이 키리미치의 뺨에 닿는다.

“그러니까, 에이미를 사랑하도록 해.”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파트너로 삼을 수만 있다면 노년기 때까지의 시간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시로는 평범한 것을 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키리미치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나이가 좀 들어 돌봄이 필요한 어린 개체를 키워내고, 종극에는 안온한 노년을 보내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아마시로의 욕심이다. 키리미치와 상의 되지 않았으며 그가 바라는지도 모를…… 오직 아마시로만의 희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키리미치는 손을 올려 아마시로의 손을 감싸 잡는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내린다. ……사다시.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아마시로는 그제야 그와 눈을 맞췄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싫어.”

“그러면 뭘 하고 싶은데.”

“나는, 너랑…… 사다시랑…….”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그 말이 꼭 고해처럼 들렸다. 동시에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로맨스 소설에 적힌 수많은 문장보다도 더 달게 느껴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떠나고 싶다는 말이 절절한 사랑을 담아낸 것만 같은 걸까. 함선의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과정에 불과한데. 왜 이리도 로맨틱하게 들리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키리미치의 말과 그 안에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모순된 감정에 아랫입술을 딱딱한 이로 짓씹는다.

“어디로 갈 건데.”

“몰라.”

“그러면서 어디를 가겠다고 하는 거야.”

“어디든 가고 싶은 거야.”

막무가내로 구는 모습에 그는 한숨을 삼켰다. 대체 어디로? 네가, 내가, 우리가 어디에 갈 수 있는데? 우리는 이곳에 있어야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텐데. 여기는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데…….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소망을 완전히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태어나기를 이곳에 태어났기에 죽는 것 또한 이곳에서 죽어야 마땅한데. 그것이 가장 안전한데……. 아껴주고 싶다. 아껴주고 싶기에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었기에 그의 행동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그런 성격을 이 함선 속 어느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가장 좋아했다.

“꼭 그래야 해?”

힘없이 뱉어낸 말에는 짙은 체념이 묻어있다. 아마시로는 항상 키리미치에게 져주곤 했다. 마냥 단호하게 굴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도 키리미치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될 거라는 걸, 결국 그의 뜻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매번 그랬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어렴풋이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꼭 그렇게 하고 싶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되묻는다. 그건 단순히 의문을 담아낸 질문이 아니었다. 간절한 애원에 가까웠다. 아마시로가 유일하게 소망하는 것이 바스러지거나 형태라도 남아 유지하는 건, 키리미치의 뜻에 달렸기에 아마시로는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제 뜻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사다시.”

“응, 토오루.”

“같이 어딘가로 가자. 너만 괜찮다면…….”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떠나자고 말하는 키리미치에 아마시로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파묻는다. 뺨에 키리미치의 체온이 묻어난다. 꼭 그래야 하겠냐고, 꼭 그렇게 하고 싶냐고. 몇 번이나 되묻고 싶었으나 키리미치는 몇 번이나 똑같은 대답을 내어놓을 거라는 걸 아마시로는 알고 있다. 알았기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소망하던 것이 힘없이 꺾인다. 그래. 그러자. 토오루. 아마시로의 말은 평소처럼 단단하지 못했다. 어딘가 무르고, 금방이라도 뭉개질 것만 같다. 키리미치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유약하게 말하는 아마시로를 무시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작은 것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시로가 바라는 대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어떠한 것도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사다시.”

키리미치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유일한 친구이자 파트너에게 아주 조금의 거짓도 담기지 않은 진실 된 사과를 건네는 것뿐이었다. 사다시가 여기에 있고 싶다면, 함선에 남아도 돼.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고민도 없이 내뱉는다. 어쩌면 그건 아마시로가 우주의 별이 다 사라지게 되더라도 자신과 함께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한 이유는 명백히 존재한다. 있잖아, 사다시. 이건, 네 잘못도 있어. 분명히 나만의 잘못은 아닐 거야. 떠오르는 생각이 문장으로 치환된다. 뇌 속에 떠오른 그 한마디를 내뱉지 않기 위해 키리미치는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걸 직접 말하는 순간,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애정을 기만하게 된다. 순수한 감정을 믿고 철없이, 오만하게 굴며 업신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그렇게 굴고 있는데도 그랬다.

“떠나는 법은 알아?”

“몰라.”

“그러면, 함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그것도…… 몰라.”

“그런 주제에 혼자 어디를 가겠다고 하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아마시로는 눈을 질끈 감더니 곧 키리미치의 손목을 잡고서 밖으로 나선다. 이제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익숙한 복도를 가로지른다. 이따금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마시로와 키리미치에게 아는 척 인사를 건넸으나 둘 중 누구도 인사를 받아주지는 않았다. 둘에게 있어 이제 지금도, 앞으로도 함선 속에서만 살아갈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시로는 너무나 익숙했고 키리미치에겐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금지구역을 향한다. 저긴 아무것도 없어. 식감이 별로인 오트밀 죽도, 맛없는 단백질 바도 없을 거야. 당연하겠지만, 물도 없을지도 몰라. 사다시. 그래도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아직 안 늦었어. 돌아갈 수 있어. 내가 잘 둘러대면 돼. 아마시로는 지금이라면 되돌이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발은 멈추지 않은 채로 작은 함선이 있는 구역을 향해 걸으면서 두서없이 말을 늘어둔다. 키리미치가 고집을 순순히 꺾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제 말 한 마디에 아주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으면 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키리미치는 끝까지 아마시로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완전히 포기하는 것밖에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 그러면. 체념 섞인 말을 끝으로 입을 닫는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점차 적어진다. 이윽고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무도 없는 끝에 다다랐다. 키리미치는 처음 보는 장소가 낯선 건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마시로는 이 공간이 익숙했고, 익숙했기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는 이 문을 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키리미치가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문을 여는 게 맞는 걸까. 안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네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주저한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뒤에 서서 한참을 주저하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사다시.”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키리미치는 저 안에 든 것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만약 저 안에 사람이 있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소형 함체 속의 개체가 키리미치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면? 아마시로는 두려웠다. 함선 밖에서의 삶도, 통제당하는 삶도 더 나아가 다른 무엇 하나 두렵지 않았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다. 모든 걸 알게 된 키리미치가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 봐. 그와 비슷한 감정을 담아낸 말을 내뱉고, 그것이 담긴 눈으로 날 직시하기라도 할까 봐. 번호 키 위에서 손이 멈춘다. 버튼을 누르지도, 번호 키에서 손을 떼지도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다. 왜 그러냐니까. 응? 키리미치는 이제 아마시로의 옆에 선다. 아마시로를 올려보며 그의 얼굴에 시선을 두고 있다. 눈동자 속에는 정제되지 않았되 순수하기 짝이 없는 애정과 걱정이 담겨있다. 죄책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른다. 숫자의 시작인 1에 검지를 얹은 채로 입을 겨우 떼어낸다.

“안에 뭐가 있어도, 뭐가 보여도, 안 물어봐 줄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뜻이야.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내가 그러길 바라?”

“부탁이야. 토오루.”

제발,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줘.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뱉어낸 말은 키리미치에게 닿자마자 형태를 잃으며 흩어졌다. 힘없이 뱉어낸 말에 키리미치는 말없이 그의 손등에 손을 얹는다. 문을 열기 위해선 몇 자리의 어떤 숫자가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꼭 숫자 버튼을 꾹 누를 것처럼 구는 모습에 아마시로는 그제야 키리미치와 시선을 맞췄다. 물어보지 않을게. 아마시로의 망막 속, 키리미치는 큰 다짐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눈동자는 반짝이고, 입술 끄트머리는 올라가 있고……. 너는 왜 이럴 때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걸까. 꾸짖지도 못하게. 원망하지도 못하게. 아마시로는 입술을 꾹 닫은 채로 느리게 검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1, 2, 2, 4. 본래의 터전이었던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그나마 남은 인류가 이 함선에 오른 날짜. 마지막 삶의 터전이 함선이 되어버린 날이 이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비밀번호였다. 문이 서서히 열린다. 퀴퀴한 냄새가 뒤섞인 탁한 공기가 서서히 열리는 문 틈새를 통해 복도로 새어 나온다.

안은 어두웠다. 예의상 설치되어있는 것처럼 규칙적이지 않게 존재하는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 그 어두운 공간을 내리쬐는 유일한 광원이었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뒤를 따라 걸으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조명과 달리 작은 함선들은 아주 규칙적으로 배열을 맞춰 정렬되어 있다. 사다시. 우리는 저걸 타고 가야 하는 거야? 키리미치의 말에 아마시로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저걸 타야만 떠날 수 있는 거라고. 저건 운송을 위한 이동체가 아니라 이 함선 속에서 살아가는 개체를 추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우리는 네 선택으로 인해 떠나는 것이긴 하지만, 명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곳에 더는 머물 수 없을 거 같고 그렇기에 쫓겨나는 것에 가깝다고…….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많았다. 그 중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 뿐이었다.

“응. 저거 타고 가야 해.”

아마시로는 결국 키리미치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대답을 내어두었다. 함선의 안을 들여다보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사람이 없는 작은 함선의 입구를 열고서 먼저 들어가라는 듯 옆으로 비켜선다. 키리미치는 아마시로를 보다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입구를 본다. 잠시 망설이다가 곧 발을 움직인다. 고향이라 불리는 함선과 그곳을 떠나기 위한 수단의 경계선에 선다.

“사다시도 같이 가는 거, 맞지?”

경계에 선 채로 묻는 모습에 아마시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같이 갈 거야. 나도 거기에 탈 거고. 먼저 들어가. 키리미치는 그제야 완전히 안으로 들어간다. 연한 하늘색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내려앉은 통로를 들여다본다. 마른침을 삼킨다. 되돌이킬 수 없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마음을 바꾼다고 한들 관리자들이 다시 저 함선 속으로 우리를 들여보낼 게 분명했다.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다가 결국 키리미치의 발이 닿았던 곳에 제 발을 디뎌가며 작은 함선 안으로 들어간다. 벽면을 더듬거리자 한 버튼이 있었고, 그걸 누른다. 함선 입구가 닫힌다. 작은 소리가 들렸음에도 아마시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걸어간다. 미약한 빛이 바닥에 내려앉은 채였다.

“이거 출발하려면 뭐 눌러야 하는지 알아, 사다시?”

키리미치는 함선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많은 버튼을 내려보고 있다. 아마시로는 그의 옆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는다. 아무것도 안 눌러도 돼. 우리가 할 일은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그는 함선 안에 있는 버튼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신에 서랍을 열어가며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물이 든 500mL 페트병 두 개. 아껴도 겨우 이틀 버틸 수 있을 양의 식량. 예상보단 상황이 좋았으나 그의 바람은 무참히 꺾여나갔다.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전에 다른 행성이나 함선에 갈 수 있기나 한가? 관리직으로 있었던 시절, 데이터에 남은 기록이 떠오른다. 그것은 유언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도 고통을 호소하며 고독을 곱씹고 이윽고 흐느꼈던 이들처럼 되는 걸까. 미약한 빛에 의존하여 함선 안을 살피던 아마시로는 곧 고개를 숙인다. 있지, 토오루. 충동적으로 키리미치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응?”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어떻게 말해야 키리미치를 절망에 빠트리지 않으면서 이해시킬 수 있을까. 막막한 현실에 그는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여기는 먹을 것도 적고, 마실 것도 적어. 겨우 뱉어낸 말에 키리미치는 말없이 눈을 깜빡인다. 그래서? 한참 뜸을 들이다가 묻는 모습에 아마시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말 후회 안 해?”

“후회해야 해?”

“여기서 노년기도 맞이하지 못한 채로 죽게 될 수도 있어.”

“응. 그럴 수도 있겠지.”

“……토오루. 난 무서워.”

네가 죽는 게, 무서워. 이 함선 속에 갇힌 사람을 추방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그는 이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개체와 함께 추방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시로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키리미치는 손을 아래로 내려 그의 손을 잡아 온다. 익숙한 온기에 부드러운 피부. 손가락 끄트머리가 차게 식은 손을 감싸오는 손길은 변함없이 다정하다. 그 다정함에 기대어 아마시로는 마치 신에게 제 죄를 고해성사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끝에 다다라서야 입에 담아낸다. 외로울걸. 분명 외로울 거야. 여기서 죽은 사람들 다, 외롭다고 그랬었어. 넌 모르지? 토오루, 너는 하나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안 무서운 거야. 하나도 두렵지 않게 느껴지는 거야. 아마시로의 말이 답지 않게 길어질수록 키리미치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마치 빼내려고 해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잡는다.

“……생각해봤는데, 힘들기는 해도 외롭진 않을 거 같아.”

“외로운 게 힘든 거야.”

“외로운 거랑 힘든 거랑은 달라. 사다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빛이 들어온 버튼과 먼지가 조금 쌓인 투명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가게 될 우주라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잊어내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곳에는 키리미치가 있었다. 그는 유순하게 웃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이.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듯이.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거야. 손가락 사이의 얇은 피부에 부드러운 살결이 닿는다. 손등을 감싸는 손가락의 감촉에 아마시로는 입술을 달싹인다. 키리미치는 눈을 살짝 접어 웃는다. 그의 뺨이 발갛게 물든다.

“네가 있으니까. 힘들어도 외롭지는 않을걸.”

나는 그래. 사다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키리미치는 아마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목을 간질인다. 아마시로는 그를 안아줄 수는 없었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끝을 기다렸다. 소등 시간이 되면 저 머나먼 우주로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아마시로는 앞에 난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둔다.

“내가…… 관리직에 있었을 때.”

“응.”

“이 함선에 있던 사람들이 남긴 말이나 기록을 봤었거든.”

아주 자연스럽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입에 담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에. 이번이 마지막처럼 느껴져서. 듣고 있는 사람이라곤 키리미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밀을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다. 많은 기록의 마지막이 언제나 똑같았어. 당연히 너는 모르겠지.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거야. 관리자들도 이 일은 하는 걸 원치 않아 했거든. 음성일 때도 있었고, 문자로 된 것도 있었는데. 마지막 기록은 항상 똑같이 끝나더라. 고독하고, 외로워서 이 넓은 우주의 끝에 다다라도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 거 같다고, 그랬는데. 아마시로는 그제야 키리미치의 손을 맞잡는다.

“나는 네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

“안 그럴 거야.”

“왜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어?”

“우린 지금 같이 있으니까.”

사다시, 너도. 나도 혼자가 아니니까. 서로한테 서로가 있으니, 두렵지 않아. 지금이 아니더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더라도 두렵지 않을 거 같아. 키리미치의 말은 아마시로에게 구원이 되지는 못했다. 키리미치가 무어라 말한다고 한들 지금의 아마시로가 죄책감이나 우울을 잊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키리미치의 잘못은 아니다. 단순히 아마시로라는 개체가 본래 그런 사람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에 그는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위로보다는 위안에 가까웠다. 외롭지 않으면 되었다. 네가 홀로 남겨져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독을 곱씹으며 쓸쓸히 삶을 마감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나는 그거로 됐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었다. 퍼석하게 마른 아랫입술을 혀로 훑는다. 미적지근한 온기에 불안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아마시로는 입을 꾹 닫는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추방당했던 다른 이들의 뒤를 따라가듯이 작은 함선 안에서 죽게 된다면 너보다는 조금 더 늦게 눈을 감는 편이 좋겠다고 문득 생각한다. 네가 외롭지 않게. 네가 불안하지 않게. 내 시체를 끌어안은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런 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 사다시.”

“어떤 이야기?”

“이 함선이 어디로 갈까. 우리가 어디에 갈 수 있을까. 우주에 끝이 있을까. 그런 이야기?”

“우주에는 끝이 없을걸. 함선은 우리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우주를 떠다녔는데 끝을 마주한 적이 없다고 했었잖아.”

“거짓말일 수도 있지, 뭐.”

“거짓말은 아닐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지 말고. 사다시~.”

나는 이 끝에 지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의 말에는 즐거움과 후련함이 담겨있다.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난다. 지금 함선의 위치가 어떤 위치쯤에 있더라.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우리의 위치를 안다고 한들 지구에 다다를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함선이 어느 행성에 가까이 있는지 알기만 해도 지구에 곧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얕은 숨을 내뱉는다. 지구에 가면 좋긴 할 거 같아. 네가 가고 싶어 했잖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지구. 이제는 사람이 살지 못해서 그저 둥근 구체의 행성에 불과한 그곳에 왜 그리도 가고 싶어 하는 건지 아마시로는 끝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막연한 동경일까.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탐하게 되는 욕망에서 비롯된 걸까. 이유는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운 좋게 찾아낸 장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지구가 아닐 수도 있어.”

“뭐가?”

“운 좋게 살아갈 곳을 찾아낸다고 해도. 지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이름 모를 행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개체가 살아가는 함선일지도 모르지. 살아갈 장소를 찾아낸다고 한들 그곳이 지구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키리미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순진하게, 순수하게 열망하는 것을 좇더라도 현실을 모르진 않았으니까. 그의 말에 키리미치는 작게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린다. 말간 미소와 청아한 웃음소리에 아마시로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을 뗄 수 없었다.

“가고 싶다는 거지, 꼭 지구여야 한다는 건 아니야.”

“지구가 아니어도 돼?”

“응. 아니어도 돼. 사다시랑 같이 있을 테니까. 너랑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좋아.”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러니, 내가 너한테만 유해지는 거야. 이러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만들어낸 말을 겨우 삼켜내고서 눈을 감는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말에 키리미치가 투정 부리듯 투덜댄다. 차갑다든가. 너무 감흥 없이 말한다든가.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손은 놓지 않은 채로 고개만 옆으로 돌리자 키리미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누에의 실로 짜낸 듯한 얇은 천처럼 섬세하고 촘촘한 정적이 함선 속을 가득 메운다. 함선의 벽면,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홈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내뱉은 말은 지금 전부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이 기록은 우리의 유언으로 남게 될까. 아니면 함선을 떠나간 자가 남긴 마지막 말로서 퍽 긴 시간 동안 탐구될 자료로 남게 될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마시로는 모든 것들이 유언으로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운이 좋아서 우주를 떠도는 게 아니라, 행성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너도, 나도 누구의 짝이 되지 말고 함께 있자.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키리미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에 침묵을 머금고 있다. 원치 않던 말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닫고 있는 걸까. 생각이 길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키리미치가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지도, 말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젠 우리 둘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대화할 이유도 없었다. 우주는 넓었고, 우리가 살아갈 곳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지만…… 그래도, 이제 형태가 없는 많은 것들을 신경쓰며 하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급하게 내뱉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자. 사다시. 꼭, 같이 있자.”

시간을 들였다기엔 짤막한 말이 성의 없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짧았기에 되려 진실되게 느껴졌다. 둘은 손을 깍지 껴 잡은 채로 놓지 않았다. 어떠한 약속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야 한다는 듯, 이렇게 해야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있다는 듯 미약한 체온을 느끼며 손을 맞잡고 있는다. 지구로 가는 동안, 별이나 행성에 이름을 붙이자.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백 개 정도 붙이면 지구에 다다르지 않을까? 가장 빛나는 별에는 네 이름을 붙일래. 그래도 돼? 그래도 괜찮지, 사다시? 키리미치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럽다. 모난 곳 하나 없는 발음으로 제 이름을 부르는 키리미치에 아마시로는 입술의 끄트머리를 살짝 올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 허락의 뜻을 내비치자 키리미치는 웃는다. 그 미소를 보며 아마시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태양을 떠올린다. 키리미치가 가장 빛나는 별에 내 이름을 붙여준다면 그는 우주 속에 있는 많은 행성을 헤아리다가 가장 푸른 것에 키리미치의 이름을 붙일 것이다. 푸르게 빛나는 행성이 지구이길 바라면서 네가 그리도 가고 싶어 한 그 행성에 네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밖에 없는 그 고독한 행성의 더 이상 외로운 공간이 아니게 될 테니까. 너를 닮은 것들은 전부 다정하고 태양처럼 반짝일 것만 같았다. 그러니 나는 그곳을 네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아마시로는 키리미치와 몸을 가까이한다. 차가운 우주 속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네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 함께 있다는 걸, 몇 번이라도 더 곱씹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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