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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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x 아리아

 

 

 

 

 

 

 

 

 

 

 

 

 

 

 

다자이 가문의 막내 도련님인 다자이 오사무는 조금도 아니라, 아주 많이 그것도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뒤늦기는 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리아에게만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아리아에게 다자이라는 남자는 한없이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권태로운 표정, 내뱉는 말은 염세주의자에 지독한 우울을 담고 있었고, 행동은 보기보다 은근히 거칠어서 그가 남긴 흔적은 아리아의 몸에 여전히 드문드문 남은 채였다. 아리아가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사소한 말이나 행동, 표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흔적을 볼 때, 발갛게 상기되던 볼. 위로 올라가는 입술의 끄트머리. 휘어지는 눈동자 사이로 사그라드는 밤색. 그 안에 고인 빛과 그것이 미처 가려내지 못한 이국적인 소녀의 형상. 아리아는 그런 것들이 참 버티기 힘들었다. 흔적을 볼 때마다 야살스럽게, 어떻게 보면 그저 저열한 쾌락을 느끼는 사람처럼 지어 보이는 미소를 볼 때면 아리아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불안과 공포를 오로지 혼자서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서워, 아리아? 그럴 때면 다자이는 아주 다정하게 아직 나이를 얼마 먹지 못한 아이를 달래는 듯한 투로 물었고 아리아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네, 도련님. 저는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요. 무서운 게 아니라, 끔찍한 걸지도 몰라요. 도련님은 아시나요. 주인마님이 매일 새벽만 되면 아랫배를 주먹으로 내려친다는 사실을. 도련님을 낳은 걸 저주하고, 또 저주해서 눈물로 아침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도련님은 모르시겠죠. 모르셔서 그렇게 굴 수 있는 거겠죠.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겨우겨우 지워낼 때면 다자이의 손은 아리아의 선 얇은 신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그것이 정해둔 자신만의 규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이 저택의 유일한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골칫거리인 것과는 별개로 그도 이 저택의 일원이자 그들의 혈육이었기에 대접은 받아야 마땅했음에도 그에게는 생활을 도와줄 하녀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자원하는 이도 없었고, 명을 내려도 게거품을 물며 눈물을 흘리는 하인들 탓에 막내 도련님인 오사무의 전담 하녀가 된 것은 오로지 아리아밖에 없었는데, 뒤늦게 들은 소문으로는 이전에 그에게 붙여진 하녀들이 다 죽었단다. 자신을 안타깝게 여겨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소문을 말해준 하녀장 덕에 아리아는 죽고 싶지 않다며 주인마님의 기모노 자락을 붙잡고 흐느끼던 하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다자이를 거친 하인들의 사인은 다양했다. 목을 매고 죽은 자부터, 산을 헤매다가 들개의 식사가 된 사람, 벽에 머리를 박아댄 탓에 두개골이 다 으깨진 이까지. 그저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였으나, 사실상 저택 안에서는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치부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리아가 그의 하녀가 된 것이다. 박해당해 죽은 가톨릭인 부모를 둔 머나먼 타지의 소녀. 언제 죽어도, 어떻게 죽어도 안타깝게 여길 이 하나 없고 찾을 사람 하나 없는 만만하기 짝이 없는 존재. 아리아는 자신의 역할과 처한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왜 다자이의 하녀가 되었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리아. 그거 알고 있나?”

다자이는 손에 책을 들고 있다. 그는 근래 타지에서 들여온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것처럼 굴었는데. 오늘은 중국의 손자병법을 읽고 있었다. 반쯤 남은 책을 마저 읽지도 않고서 시선을 아리아에게 둔다. 얇은 종이가 나풀댄다. 아리아는 그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킨다. 그 행위는 어쩌면 불안을 삼켜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뭘 알고 있냐는 말씀이실까요, 도련님. 몇 번을 불러도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아직도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창틀에 걸터앉아있던 다자이가 발을 다다미 바닥에 내디딘다. 고생 하나 해본 적 없다는 걸 증명하듯 희고 선이 고운 발이 아리아에게 다가온다. 아리아는 차마 바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닥에서 눈을 떼면 다자이를 마주 봐야만 했기에 고개를 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바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을 무참히 꺾어 눈앞에서 짓이겨 주고 싶다는 듯 다자이는 아리아의 뺨을 감싸 잡는다. 다정한 손길은 아니었다. 마치 가축을 품평하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로 뺨을 꾹 누른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다.

“자네는 가끔 보면 좀 멍청한 거 같아.”

“그걸 알고 있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도련님?”

“아니? 설마, 그럴 리가.”

“그러면요?”

“네 얼굴을 보니 말하고 싶지 않아졌어.”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창가로 걸어간다. 창틀에 걸터앉아 다시 책을 읽는다. 아리아는 그제야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뒤로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는다. 탁하고 펼쳐진 회색 하늘, 그것의 일부를 가리는 얇은 나뭇가지.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갈색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넘실거린다. 다자이의 시선이 잠시 아리아에게 닿으면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그가 읽고 있는 손자병법이 어떤 책일지에 대해 홀로 상상하곤 했다. 차갑고 눅눅한 다다미 바닥 위에서 아리아는 무릎을 꿇고 앉아 다자이의 곁을 지켰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얇은 유리로 만들어낸 평온 속에 있을 때,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오사무 도련님의 곁을 지키던 하녀와 하인들이 정말 줄초상을 치른 게 맞는 걸까? 불경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자각은 있었으나, 아리아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주인마님이 알면 경을 칠 생각을 쉼 없이 머릿속에 담아내고 비워내길 반복했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훑어낸다. 그것은 말을 삼키기 위한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도련님, 도련님이 정말 도련님을 돌봐준 사람들을 죽였나요? 내뱉고 싶은 많은 말과 그것을 만들어낸 의문을 삼켜내고 있을 때, 다자이가 책을 완전히 덮는다. 인생사 모든 것이 따분하기 짝이 없다는 권태로운 표정으로 창문 밖을 내다본다. 금방이라도 아래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앉아 있는 모습에 아리아의 낯이 희게 질린다.

“그러다가 떨어지세요.”

“무서워?”

내가 죽을까 봐 무서워?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는 태연자약하다. 아리아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조차 제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자이가 죽는다는 것은 아리아에게 있어 가장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단언컨대 흰 붕대를 몇 번이나 덧대어 감은 팔이나 목 따위를 볼 때마다, 그의 기행이라고 생각했지 죽음을 연상해 본 적은 없다. 다자이는 일 년이 지나도, 십 년이 지나도 이 색채 없는 저택 안에서 살아갈 것 같았다. 그렇기에 아리아는 다자이의 죽음이 두렵지 않다.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막연하게 두려워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아리아는 남자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다자이가 두려웠다. 창틀에 떨어지기 전에 제 손목을 잡아끌어 함께 떨어질 것만 같은 저 남자가 두려웠던 것이었다.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내리누른다. 그 모습에 다자이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니, 자네가 멍청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것을 말로 내뱉지는 않았다. 의문이 떠오르더라도 삼켜내는 것이 다자이의 일상에 섞여들어 무탈한 삶을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아리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원색적인 비난에 가까운 말은 여전히 어색했다. 아리아는 눈을 어디에도 두지 못했다. 바닥을 바라보면 예의가 없는 하녀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고, 다자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두려웠다. 어정쩡하게 앉아있자 다자이는 손을 내젓는다. 이렇게 있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은가? 나가서 일 보도록 해. 내 어머니의 한탄을 들어줘도 좋고. 혹시 모르잖아. 내 어미가 네 행동에 감복하여 널 이 저택에서 내보내 줄지? 귓등을 간질이는 웃음소리에 아리아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참 무릎을 꿇은 채로 있던 탓에 종아리가 저릿했다. 통증인지 불편함인지 모를 것을 곱씹으며 다자이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그러면 먼저 나가보도록 할게요. 도련님.”

“그래. 아. 해가 지면 오도록 해. 그땐 심심하거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봐.”

엄연한 축객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아리아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장지문을 닫고서 복도에 발을 내디딘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 발바닥이 닿자 몸이 잘게 떨렸다. 뻣뻣한 기모노 자락이 발목과 복숭아뼈를 간질인다. 사람의 뼈처럼 곧고 길게, 그러나 끝이 있고 그 끝이 다른 어딘가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는다. 숨을 크게 들이쉴 때면 아주 옅은 향냄새가 났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저택 근방에 있는 절에서 불경을 읊어대는 스님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는 듯했다. 다자이의 방에서 좀 멀어진 뒤에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구름에 덮인 탓인지, 며칠 전부터 내려앉은 안개 탓인지. 하늘은 희뿌옇기 짝이 없었다. 비가 오려나. 아니면 눈이 내리려나. 에도는 날이 그리 춥지 않다고들 하던데. 삿포로의 겨울은 언제나 혹독했고, 돈 없는 자에겐 유독 가혹했다. 그녀는 이따금 다자이를 따라 나갈 때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이들을 떠올리다가 곧 관둔다. 알아서 잘 살아가겠지. 지금 제 처지에 타인을 걱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녀는 뻣뻣한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었다가 펼치기를 반복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다자이의 말 따라 안주인에게 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아리아를 보면 다자이를 생각할 것이고, 다자이를 떠올리면 또 제 아랫배를 내려치며 소리를 질러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정처 없이 목적지도 정해두지 못한 채로 하염없이 복도를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희었던 발가락이 추위로 인해 붉게 달아오른다. 발가락을 꼼지락댄다. 발톱이 나무에 닿는다. 나무가 긁힐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그건 조금 거슬렸고, 거슬리면서도 저택 내부에 내려앉은 정적을 살라 내주어 달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 복도를 걷던 아리아는 결국 또 다자이 방 앞에 멈춰 선다. 발소리가 멎는다. 그러면 다자이는 아리아가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들어와, 하고.

 

 

 

 

다자이의 저택이 있는 마을의 입구에는 긴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로사리오나, 다 타지 못한 성경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리아의 부모가 남긴 유산도 있었다. 아리아는 그곳을 생각할 때면 마치 그녀의 부모와 함께 순장당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와 동시에 살아남았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죄책감을 잊어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안도를 느낀다. 아리아에게 있어 이 저택은 거대한 요람과 같았고, 그 요람은 제 부모의 무덤 속에 있다. 아리아는 그녀를 낳아준 부모의 목숨 위에 서서 살아가는 것과 같았기에 쉬이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박해당한 가톨릭 신자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나무기둥에 매달려 있다. 아리아는 품에 다자이가 사 오라고 명했던 책을 끌어안은 채로 기둥을 올려본다. 책을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간다. 묵직한 무게도 부모를 잊어내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뭐 하니. 빨리 안 오고.”

앞서서 걸어가던 하녀장이 짜증스레 말한다. 아리아는 그러면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녀장이 아리아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번 심부름이 까다롭기 짝이 없는 다자이가 맡긴 것이었고, 그의 예상보다도 더 늦어진다면 둘을 비꼬는 말을 한참 들어야 할 게 분명했기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덜 듣고자 재촉한 것이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아리아는 하녀장의 재촉이 퍽 달갑게 느껴졌다. 하오리를 뒤집어써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다고 한들 특유의 이국적인 외모와 눈동자 색은 미처 가리지 못했다. 타지에서 온 그녀는 이 마을에서 퍽 유명했다. 박해당해 죽은 부모 탓인지, 외모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건 확실했다. 감사해요. 아리아는 하녀장을 향해 그녀만 들을 수 있을 작을 목소리로 말한다.

“널 위해서 말한 것도 아닌데 감사 인사를 왜 하니.”

“……그냥, 감사해서요.”

“됐으니 빨리 걷기나 하렴. 오사무 도련님은 늦으면…… 하아.”

“네. 그렇게 할게요.”

빨리 가요. 아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닫아야 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습하고 찼다. 아리아는 혹여나 뒤집어쓰고 있는 하오리가 바람에 날아갈까,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아까까지 올려보고 있던 기둥이 생각난다. 그곳에 매달려 산채로 불태워지던 부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곧 아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 기둥에 묶인 자신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희고 단단한 이가 아랫입술에 닿는다. 뭉툭한 통증에 아리아의 미간이 조금 좁아진다. 하녀장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아리아의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아스라이 멀리 저택의 형상이 보인다. 그곳은 마을에 있는 어느 집보다 컸고, 웅장했으며, 화려했다. 아리아의 걸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작아지자 하녀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아까처럼 타박하진 않는다. 아리아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아리아를 이해한다. 꺼림칙한 다자이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을 원치 않겠지. 알고는 있었으나, 이대로 어딘가로 홀연히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녀장은 지팡이를 고쳐 쥔다.

“네가 넘어져서 책이 찢어지기라도 큰일이니 조심해서 천천히 오거라. 아리아.”

투박한 배려에 아리아는 다시금 말한다. 감사해요, 하녀장 님. 그녀는 하녀장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발을 떼어냈다. 저택의 대문에 다다랐을 때, 하녀장이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곧 문이 서서히 열렸다. 틈새로 짙은 향냄새가 새어 나와 하녀장과 아리아의 발을 훑어댔다. 밖과 저택의 경계선에 발을 얹는다. 그러면 하녀장은 아리아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문턱은 밟지 않도록 하렴.”

“네?”

“주인마님께서 싫어하셔.”

재수가 없다고. 오사무 도련님을 낳은 날에 문턱을 몇 번이나 밟으셨거든. 작게 속삭이는 말에 아리아는 순순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자이 가문의 안주인은 그녀가 낳은 막내를 끔찍하게 여겼는데, 그 때문인지 다자이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혐오하듯 굴었다. 자신의 뱃속에서, 자궁 속에서 키워낸 아이를 낳은 순간과 그날의 기억마저 잊지 못하고 일평생 얽매여 새벽마다 아랫배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볼 때면 아리아는 그 여자가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아리아는 대문의 문턱을 밟지 않고 넘어 저택의 안으로 들어선다. 바닥에 깔린 자갈이 밟힐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것은 하녀장과 아리아 사이에 내려앉은 정적을 지워내기엔 충분한 소리이기도 했다. 둘이 완전히 저택의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하녀장은 등을 돌려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너는 오사무 도련님께 가거라.”

“……도와드릴 게 있지 않을까요.”

다자이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리아가 쉬이 발을 떼지 않고 있자, 하녀장은 얕은 숨을 내뱉었다. 아리아. 도련님께 돌아가렴. 단호하게 내뱉은 말에 아리아의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단호히 말한 것과 달리 아리아의 반응이 눈에 밟혔는지, 그녀는 둥근 어깨를 토닥여준다. 도련님은 책을 받으시면 기분이 잠시 좋아지시니 괜찮을 거다. 도련님이 네게는 유독 유하게 구시지 않니. 괜찮을 거다. 오히려 네가 늦게 다다르면 화를 내실 거 같으니, 빨리 가보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죽음으로 떠미는 듯한 말은 너무나 상냥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하녀장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했다. 하녀장은 그런 아리아의 어깨를 억세게 감싸 잡는다. 도련님께 가렴.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내뱉은 말에 아리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품에 들린 책이 아까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저택의 중문을 열어 신발을 벗는다. 맨발을 복도에 내디딘다. 냉기에 몸이 잘게 떨렸다. 벽면에 있는 수많은 장지문을 지나쳐 가장 끝에 있는 방을 향해 걷는다. 한 방 앞에 멈춰 선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뽀얀 입김이 허공에 피어오르고 그것은 아리아의 뺨을 훑어내더니 곧 사라진다.

“도련님. 아리아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나지막이 내뱉은 말 뒤로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들어와. 기분을 알 수 없는 평탄한 말투와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리아는 몸을 움츠렸다. 한 손을 장지문을 향해 뻗는다. 장지문을 옆으로 밀어 연다.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은 다자이는 이미 몇 번이나 읽었던 서양의 고서를 읽고 있었다. 참 빨리도 왔군. 하녀장이랑 에도에 가고 싶다고 수다라도 떨고 온 모양이지? 책에 닿아있던 시선이 아리아에게 향한다. 그의 밤색 눈동자는 마치 잘 만들어진 유리구슬처럼 미약하게 반짝였고, 빛을 받을 때마다 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린다.

“그런 게 아니에요. 도련님.”

“그러면?”

“책을 찾아주시는 게 조금, 오래 걸렸어요.”

“분명, 마을 입구에서 자네의 부모 무덤 앞에 있다가 온 거겠지. 그리 변명하지 않아도 돼.”

“……아니에요.”

“그래. 그런 거로 해주도록 하지. 받아온 책이나 주겠나?”

아리아는 다자이에게 한 걸음씩 걸어간다. 탁자 위에 몇 권의 책을 내려둔다. 다자이는 그것을 보고 입술의 끄트머리를 위로 올려 웃는다. 가장 위에 있는 책을 한 권 집어 들고서 표지를 펼친다. 아리아가 보라는 듯 탁자 위에 펼쳐진 책에 적힌 글자는 그녀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완벽한 타지의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시려면, 제가 방해될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가 있을까요. 도련님? 조심스레 내뱉은 말에 다자이는 눈을 책에 둔 채로 말한다. 굳이? 여기 있어. 어차피 자네가 있든 없든, 방해가 되진 않으니까. 아리아는 결국 방의 구석진 곳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자이는 그가 말한 것처럼 독서를 이어갈 생각인지 책의 첫 장에 눈을 두고 있다. 누에의 실로 만들어진 천처럼 잘 짜인 정적이 방에 내려앉는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방은 아리아에게 있어 잘 만들어진 감옥과도 같았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쥐자 기모노의 천이 손바닥을 간질인다.

“자네도 책을 읽고 싶나?”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글은 읽을 줄 알지?”

“네. 네에. 읽을 수 있어요. 알고 있어요.”

“흠, 그래?”

다자이는 책을 잠시 덮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허리까지 올 정도로 높게 쌓인 책더미로 걸어가 그것들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혼잣말로 무슨 책이 좋을까, 하다가 이건…… 하며 고심하는 듯한 말을 내뱉고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아리아는 고작 하인에게 책을 읽게 해준다는 것도, 그리고 하인에게 줄 책을 직접 고르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책을 고르러 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주제넘다며 뺨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리아가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다자이는 책을 골라 그녀의 앞으로 걸어온다.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다. 책을 아리아의 허벅지 위에 올려준다. 아리아는 고개를 숙여 표지에 적힌 제목을 읽는다.

“내 방에 있는 유일한 원서야.”

익숙한 언어지? 희고 긴 손가락이 표지에 닿는다. 그것이 가리키는 언어는 낯설지 않았다. 유려한 필기체로 쓰인 글씨를 보며 아리아가 눈을 반짝인다. 그 모습에 다자이는 낮게 소리 내어 웃는다. 여기서만 읽도록 해. 가지고 나가면 귀찮게 될 수 있으니. 몸을 일으켜 다시 책을 읽으러 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다. 아리아는 표지를 하염없이 쓸다가 고개를 들어 입을 달싹인다.

“감, 사해요. 도련님.”

“자네에게 감사받을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그래도요. 감사해요. 정말로……. 기뻐요, 도련님. 정말 기뻐요.”

유순하게 웃는 아리아의 표정을 본 다자이가 멍하니 눈을 깜빡인다. 그의 망막에는 아리아의 미소가 맺혀있다. 다자이는 퍽 오랜 기간 아리아와 함께 지내왔으나, 그녀가 이리 순하게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다자이의 시선이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자 아리아는 멋쩍은 듯 다시 고개를 숙여 시선을 아래에 둔다. 겨울에나 볼 수 있는 눈의 색을 쏙 닮은 백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굽이지며 바닥으로 내리 떨어진다. 다자이의 시선은 아리아의 신체 중 가장 연약한 것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책이나 읽도록 해.”

자네는 부산스러우니 차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를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나지막이 내뱉은 말은 유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아리아의 입에는 침묵이 들어찼다. 그녀는 다자이처럼 표지를 펼친다. 아리아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적힌 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리아는 처음으로 다자이의 방에서 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앉을 수 있었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책 속의 작은 세계에 빠져든다. 다자이는 그런 아리아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간다.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해주겠나? 남자는 책을 정리하는 시늉을 했다. 다 읽지도 않은 것을 괜히 책 무더기 위에 쌓아두거나, 다 읽은 책을 빼내길 반복한다. 아리아는 그녀가 잠겨있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고개를 들었다.

“궁금하신 게, 어떤 것인가요. 도련님?”

“별거 아니야. 갑자기 하나가 궁금해져서 말이야. 자네는 외로워도 살아갈 수 있나?”

“……그렇지 않을까요?”

“단언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게.”

외로워도, 고독해도, 목숨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뱀의 것을 닮은 눈동자로 아리아를 직시한다. 아리아는 그 시선에 저도 모르게 몸을 잘게 떨었다. 입술을 달싹인다. 아리아는 단언컨대 제 부모가 죽은 이후로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매일 밤, 그들이 믿었던 신과 그깟 신앙심이 뭐라고 자신을 이리 두고 떠나갔는지 원망했다가도 부모를 그리워하며 소맷자락을 적셨다. 그런데도 아리아는 살아갔다.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목숨 위에 서 있는 것이니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살아갈 수 있어요.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다자이의 입가에 묻어나는 미소가 더욱더 짙어진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부정할 마음은 없네. 다자이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는 마치 곧 할복할 사람처럼, 유서를 남길 것처럼 가지런히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앉아있다.

“아, 이전에 아랫것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는데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지?”

“저는 토끼가 아니에요.”

“생명체는 다 똑같다네. 자네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 모양이군.”

“인간도 외로우면 죽나요?”

아리아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잊어내야만 했다. 오사무 도련님께서 만약 인간도 외롭고, 고독할 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하신다면, 도련님은 어떻게 살아있으신 건가요? 아리아가 보았을 때, 다자이란 인간의 삶은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를 낳아준 어미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며, 그를 키워주는 아비조차 그를 피하고, 형제들은 그를 꺼림칙하게 여기는데 어찌 안 외로울 수 있을까.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다자이가 돌연변이라는 뜻일 것이다.

“외로워서 죽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

“그렇겠네요.”

“공감하기 힘들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 다자이 가문의 안주인께선 그런 걸 좋아하긴 했다만…… 나는 그렇지 않거든.”

“그런 건, 아니에요.”

“따지고 들려는 건 아닐세.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깨를 으쓱인다. 다자이는 턱을 괸 채로 아리아를 직시한다. 자네는 외롭고, 고독하면 죽을 것 같아. 내가 보기엔 그래. 아주 당연한 사실만을 말한다는 것처럼 확신에 찬 투로 말하는 모습에 아리아는 괜히 짜증이 났다. 당신이 뭘 알고 있다고. 모든 걸 가지고 있는데, 모든 걸 가지지 못한 것처럼 구는 당신이…… 뭘 알고 있다고. 나는 부모를 잃은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 않던 적이 없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내리누른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기모노의 천이 형편없이 구겨져 본래의 형태를 잃는다. 다자이는 아리아의 짜증조차 그의 유일한 유희인 것처럼 말을 이어간다. 자네는 외로운 적이 없었어. 단언하지. 고독함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굴 수가 없어. 자네의 표정을 봐. 고독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의 말은 아리아의 속을 아주 깊이 파고들었고, 연약한 내벽을 긁어댔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도련님은…… 도련님께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시잖아요.”

“내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다자이의 고개가 옆으로 기운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다자이가 곧 웃음을 터트린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는 바닥에 내려앉거나 허공에 떠다니다가 사라지지도 않고 아리아의 귓등에 묻어난다. 아리아는 그 웃음에 멍하니 다자이를 바라본다. 왜 웃으시는 거예요, 도련님? 어째서 그리 웃으시는 거예요? 잘게 떨리는 목소리에 뭉개진 발음이 형편없다. 그보다도 형편없이 느껴진 것은 비웃는 듯한 다자이에 비참함을 느끼는 자기 자신의 형상이었다.

“우스워서 웃지. 그게 아니라면 웃을 이유도 없지 않나.”

“제가요?”

“그래. 자네. 나는 자네가 즐거워서,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어.”

키득거리며 웃음을 실실 흘리는 모양새에 아리아는 입을 꾹 닫았다. 아래로 툭 떨어진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인다. ……나가 있을게요.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반항을 말로 내뱉자 다자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손을 내저으며 말없이 축객령을 내린다. 아리아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멀어질수록 걸음이 빨라진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빌어먹을 도련님. 빌어먹을 다자이. 내뱉지 못할 욕을 속으로나마 읊조리며 발을 떼어낸다. 아리아는 사용인들이 모여서 쉬는 뒷마당을 향해 걸었다. 그들은 아리아와 가까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아리아 또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지는 않았으나, 다자이와 함께 있는 것보단 그 속에 뒤섞여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또 닭이 죽었다지?”

“또 죽었대? 마츠다 씨가 한참 화를 내겠네.”

“목이 반으로 꺾였다던데.”

아리아는 눈치를 보다가 그들의 근처에 앉는다. 여자들은 아리아를 흘겨보다가, 곧 시선을 돌린다. 꼭 아리아가 없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며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닭이란 닭은 다 잡아 죽이는 모양이지? 들짐승 같지도 않고. 이 저택 안에서 그 귀한 닭을 잡아 죽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매질 당하고 쫓겨나는 게 무섭지도 않나. 별일이야. 별일이야. 아리아는 대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닭장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새벽녘만 되면 들려오던 닭 울음이 들리지 않게 된 건 꽤 오래된 일이었다. 입술을 달싹인다. 목이, 반으로 꺾였다지. 그 말이 속에 걸려 내려가질 않았다.

“아리아. 얘. 아리아.”

“……네?”

“뭐 아는 거 있니?”

“얘가 뭘 알아. 닭이 죽은 것도 지금 알았을걸?”

“그렇긴 해요.”

“봐. 후지모토 씨. 아리아 쟤는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죄송해요.”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후지모토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리아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여자의 시선이 떨어져 나가자 둘은 언제 그랬다는 듯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돼지가 죽는 거 아니야? 소가 죽을지도 모르지. 소의 머리가 반으로 꺾이면 그건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누에의 소행일 수도 있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를 요괴를 입에 담는 여자들의 낯이 공포에 물든다. 몸을 잘게 떨더니 소름 돋는 소리라며 재잘재잘 떠든다. 아리아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보이지도 않았다. 아리아에게 있어 그들은 그저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다. 턱을 괸 채로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알 수 없는 존재에서 비롯된 공포라 뒤섞인 말을 내뱉다가도 곧 다른 하인들의 뒷말을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이따금 아리아가 말을 옮길까 봐 걱정되는 건지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리아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닭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뭐 있기나 하니, 아리아?”

“내비 둬. 서양에서 온 여자애는 보는 눈이 다른가 보지. 뭐~.”

깔깔대며 웃는 여자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그 소리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 거기에 걸려있는 찢긴 천 조각. 천의 색과 언뜻 보이는 무늬. 옅은 빛을 받을 때마다 미약하게 반짝이는 게, 하인들이 입고 다니는 싸구려 천은 아닌 듯했다. 아리아는 저것이 어디에서 떨어져 나왔는지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보는 사람이 매일같이 입고 다니는 하오리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아리아는 멍청하지 못했다. 저게, 왜 저기에 있지? 입술이 조금 벌어진다. 아리아가 일어나자 여자들은 그녀를 힐끗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닭장에 가까워질수록 아리아의 걸음이 빨라지고 보폭이 넓어진다.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닭장 속에는 암탉이 몇 마리밖에 없었다. 그것들이 낳은 달걀은 다 깨진 채였다. 투명하고 노란 진액. 병아리가 되지 못한 것은 붉은 형태로 말라붙어있다. 닭들은 그걸 쪼아먹으며 운다. 아리아의 손은 닭장 속에 닿지 못했다. 닭장의 닭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얼기설기 묶인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린 천을 쥔다. 매끄러운 비단의 감촉이 손바닥과 손가락 끄트머리를 간질인다. 천이 닿은 피부가 화상을 입은 듯 뜨겁게 느껴졌다.

“……도련님?”

오사무, 도련님? 아리아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천을 몇 번이나 매만진다. 이게,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리아는 다자이의 방에 그리고 다자이의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그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불청결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이런 곳에 발을 들일 사람도 아니었다. 몸에서는 언제나 짙은 향 내음이 났는데, 그것은 닭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퀴퀴하고 탁한 냄새와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멀었다. 찢겨 나온 천에 코를 가까이 댄다. 그것에선, 아주 역한 악취가 났다. 닭의 배변물과 깃털의 비린내가 뒤섞인 냄새 사이, 아주 옅어서 잘 맡아지지도 않는 향긋한 향냄새가 난다. 아리아는 천을 놓지도, 완전히 쥐지도 못한 채로 코를 가까이 한 채로 멍하니 서있는다. 다자이의 방에서 맡던 익숙한 냄새에 그녀의 몸이 굳는다. 오사무 도련님의 소행인가? 그런데, 그가 이런 일을 벌인다고 한들 그에게 이득 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데. 아리아는 문득 다자이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이득을 바라고 일을 벌이는 인간이었던가? 그녀가 봐왔던 남자는 언제나 권태로웠다. 염세주의자의 특징만 빼내어 와 만들어낸 듯한 인간이었고, 그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처럼 굴지만 속내를 까보면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아리아. 얘. 아리아~!”

아리아는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불경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등 뒤로 손을 두었다. 타인에게 보이면 안 될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타인에게 보여선 안 되는 것처럼. 마른침을 삼킨다. 텁텁한 입안을 혀로 훑고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잠깐 닭이 몇 마리 사라졌는지 보고 있었어요.”

“그걸 하나하나 세어도 의미가 있기나 하니? 내일 또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휴. 그만 세거라. 기분만 나빠지지.”

“네. 알겠어요. 먼저 들어가세요.”

날이, 추우니까요. 아리아의 어색한 미소를 유심히 바라보던 여자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의 안을 향해 걷는다. 아리아는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손가락에 걸리는 천을 힘주어 쥔다. 그들이 저택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등 뒤로 숨겼던 손을 아래로 툭 떨군다. 길이가 너무 길지 않은 천이 손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넘실거린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감히, 하녀 따위가 도련님에게 해가 될 게 분명한 것을 손에 들고 있어도 되는 걸까? 주인마님께 언질이라도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만약에 말한다면 그 심약한 주인마님께서 미치지 않고 지금처럼 지내실 수 있기나 할까? 생각이 원치 않을 정도로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아리아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고, 천을 놓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었다가 힘을 풀기를 반복했다.

“아리아.”

아리아의 생각을 끊어낸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저택 쪽으로 돌린다. 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뒷문에 기대어 선 다자이가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오사무 도련님? 그녀의 말에 다자이가 웃는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 남자가 아리아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덥수룩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나풀댄다. 아리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에 두었다. 하오리. 그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하오리 자락을 눈에 담는다.

“손에 든 건 뭐야?”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구요.”

“이런 걸 줍는 게 네 일은 아니니 다음부터는 그냥 줍지 말고 내버려두도록 해.”

“알겠어요, 도련님.”

하오리는 찢어진 부분 하나 없이 깨끗했다. 기우였던 걸까. 단순한 착각에 불과했을까.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아리아의 손에 들린 것을 보는 다자이에 복잡하던 생각이 서서히 형태를 잃고 종극엔 모습을 감춘다. 이거 도련님의 것이 아닌가요? 이 천으로 만들어진 하오리를 봤었는데……. 아리아의 말에 다자이는 소리 내어 웃는다. 알아서 생각하도록 해. 확실한 정답도, 오답도 아닌 두루뭉술한 말을 내뱉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더 묻지도 못하고 그의 뒤를 따라 걸어야 했다. 다자이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달라지지도 않은 물음을 계속 입에 담기라도 한다면 분명 짜증스레 굴 것이 분명했기에 아리아는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내리눌렀다. 너무나 익숙하게 언제나 그래왔듯이 다자이의 뒤를 따른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갈색 머리카락이 나풀댔고, 하오리 자락이 허공에 넘실거린다. 아리아의 시선은 하오리 자락 끄트머리에 닿아있다. 정말로,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걸까.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된 억측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모시는 하녀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다.

“죄송해요, 도련님.”

“뭐가?”

“그냥요. 죄송해서요…….”

“네가 실수하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됐어. 사과하지 않아도 돼. 네게 사과받을 이유도 없고.”

웃음기가 뒤섞인 목소리에 고개가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을 때, 아리아의 눈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이 보였다. 색이 조금 천이 덧대어져 있는 끄트머리가 눈에 밟혔다. 네가 나한테 사과할 이유는 없다고, 내가 말했지? 키득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마치 아리아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본 걸 아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잘게 떨린다. 온기를 불어오는 찬 바람이 다 앗아간 듯 피부가 한없이 차가워진다. 아리아는 저택의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대신에 행동은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손에 들고 있던 찢긴 천을 오비 틈새에 끼워 넣어 감추어냈다. 다자이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아리아 그녀를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구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며 저택 안으로 완전히 들어선다.

“오늘 저녁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할 거야.”

“도련님들과 아가씨들도 있으신가요?”

“있겠지. 가족끼리 가지는 식사 시간이니까. 아리아. 자네는 내 뒤에 앉아서 물을 가져오거나 그릇이나 치우도록 해.”

“저도 가야 하나요?”

“그러면. 나 혼자 갈까?”

응? 다자이의 말에 다급하게 아니에요, 하고 말한다. 다자이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침묵을 입에 머금은 채로 가장 큰 방을 향해 걷는다. 장지문을 열어주려고 하자 그는 아리아를 옆으로 가볍게 밀어내고서 직접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버지, 어머니. 나긋한 어투로 말하자 주인어른은 고개를 끄덕였고, 주인마님은 미간을 찡그렸다.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버린다. 다자이는 제 어미가 보이는 모습을 개의치도 않았다. 아리아가 방으로 들어오자 익숙하게 장지문을 닫고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자리로 가 앉는다. 아리아는 다자이의 뒤에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자이가 오자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들이 음식을 내어온다. 단상 위에 하나씩 올려지는 정갈한 음식을 힐끗 본다.

“먹기 시작해도 좋다.”

주인어른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서로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다가도 다시 앞을 보며 음식을 씹는다. 다자이는 그들 사이에 있었음에도 가장 친밀한 존재가 침묵과 정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음식만 입에 넣고 있다. 마치 이 모든 행위가 부질없으며 음식을 먹는 이유조차 신체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서인 것처럼 비추어졌다. 타인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아리아의 눈에는 그랬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앉아 있다. 물을 따라주거나, 그릇을 치워달라는 다자이의 말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식사 자리에서 아리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따라주고 그릇을 치우는 건 주방 하인들의 몫이었다. 더 나아가 다자이의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리아가 몸이라도 일으킨다면 주인마님의 눈총을 받을 게 뻔했다. 기모노 자락을 감싸 쥔다. 누군가 허락만 해준다면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

다자이가 말을 꺼낸다. 그는 보기 좋은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였는데, 그의 입술을 본 주인마님의 낯은 파리하게 질렸다. 아리아의 눈에 그녀는 참 안쓰러워 보였다. 낯은 허옇고, 입술은 바들바들 떨고 있고, 말은 제대로 내뱉지도 못한 채로 다자이를 바라보는 모습에 아리아는 퍼석하게 마른 아랫입술을 혀로 훑는다. 오사무 도련님께서 뭐라고 말하실까. 어떤 말을 꺼내실까. 단언컨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리아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다자이와 그의 어미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자이가 제 어미에게 어떤 말을 할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다자이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말로 타인을 기쁘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유독 잘했었으니까.

“근래 닭이 꽤 많이 죽어 나갔다지요.”

“……그래서?”

“신경쓰이지 않으시나요? 제가 아는 어머니라면 밤에 잠도 이루시지 못할 텐데.”

키득거리는 다자이에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릇을 치우고, 나르던 하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냥 해보았던 말입니다. 모르시나, 해서요. 가축은 중요한 재산이니 안주인게서 알고 계셔야지요. 흠잡을 곳 없는 유려한 말에 주인마님은 손을 잘게 떨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아랫배에 손을 얹는다. 제 뱃속에 있던 것을 없애내지 못한 여자는 다자이를 볼 때마다, 그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그 위를 어루만지곤 했다. 알고 있으니 걱정 안 해줘도 돼. 네 일을 더 신경 쓰도록 하렴. 바람직한 어미의 군상처럼 그렇기에 애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쉬이 내뱉는다. 다자이는 그녀의 말에 상처받지 않은 듯했다.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고 계시면 다행이지요.”

“네. 그러니…….”

“어머니는 그런 흉한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니 그 누구도 말해줄 사람이 없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여자의 미간이 결국 좁아진다.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주안 어른이 입을 연다. 오사무. 그리 말할 거면 먼저 나가도록 해라.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말에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몸을 일으킨다. 아리아를 힐끗 보며 함께 나가자는 듯 고갯짓한다. 아리아는 그제야 그를 따라 섰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저려와 평소처럼 빠르게 걷는 것이 힘들었으나, 다자이는 아리아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지문을 옆으로 밀어 열고서 복도로 발을 내디딘다. 아리아는 발을 절뚝거리며 그를 따라 걸었다.

“참 재미도 없지.”

“네?”

“지루하지 않았나?”

“지루한 건, 모르겠어요. 그냥 가족분들과 식사를 하신 거 아닌가요?”

“글쎄. 그걸 식사라고 할 수나 있나.”

참으로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어. 다자이는 아스라이 먼 곳을 바라본다. 그의 밤갈색 눈동자에 빛이 맺힌다. 방으로 들어가서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책을 읽으시면 기분이 조금 풀리시지 않을까요?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묻는다. 그러자 다자이는 헛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아. 그저 따분할 뿐이지. 멈췄던 발을 다시 떼어내기 시작한다. 방에 다다른 남자는 문 앞에 선다. 등을 돌려 아리아를 내려본다.

“아리아.”

“네, 도련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도 좋아.”

“시중은 필요 없으신가요?”

“손이나 발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돌아가라고 한 말이겠지. 이해했나?”

“네. 이해했어요.”

“그래. 자네는 돌아가서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을 테니 서두르도록 해.”

“할 일이…… 있기는 하지요.”

“무척이나 많지. 우리 가족 때문에 하지 못했던 식사도 해야 하고. 주방의 일을 거들어주거나, 묵은 때가 켜켜이 쌓인 옷도 빨아야 하고. 그리고…….”

다자이의 크고 고운 손이 아리아의 오비에 얹어진다. 그것은 다자이의 어미가 아랫배를 어루만지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는 오비의 끝자락을 손톱으로 갉작인다. 오비 속에 있는 그것도 처리하든, 내 어미에게 알리던 해야 할 거 아닌가. 가까이 다가왔던 얼굴이 멀어진다. 다자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리아에게 두었던 손을 떼어낸 지 오래였다. 아리아의 시선이 다자이에게서 그녀의 오비로 천천히 내려간다. 몇 겹 겹쳐서 두른 오비의 틈에 끼워 넣었던 찢긴 천 조각이 떠오른다. 언제부터 지켜봤던 거지? 대체 언제부터? 아리아의 안색이 아까 상석에 앉아 있던 여자처럼 희게 질린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리아의 물음에 다자이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다. 왜 자네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것이 그리도 중요하다는 듯 구는 걸까. 답을 바라지 않는 혼잣말에 불과한 것에 아리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다자이는 아리아의 둥글고 좁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아이를 달래듯 느리게 쓸어내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 것이 중요한가, 지금?”

자네가 할 일은 그걸 내 어미에게 가져다 바치며 자네의 생각을 말하거나, 오비에 끼워둔 천을 태워 없애는 것. 둘 중 하나밖에 없을 텐데. 어깨에 닿아있던 손이 백색의 머리카락을 훑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아주 부드럽게 정돈해준다. 엉키거나 헝클어진 곳이 없어진 뒤에야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겨준다. 다자이는 아리아가 마치 그의 유일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일한 이해자라도 된 것처럼, 가장 애틋한 존재를 어루만지는 듯한 손길이었다. 아리아는 그 행동이 그녀가 알고 있는 다자이라는 사람과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가 정말로, 주인마님께 말하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다자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리아는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그는 지루하다는 듯 얕은 한숨을 내뱉었으나 입가에 머금은 미소만큼은 지워내지 않았다. 네가 말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아리아. 내 삶도, 자네 일상도. 변함없이 아주 길게 유지될걸. 걱정하지 마. 그 무엇도 변하지 않을 거야. 다정하게 속삭이는 그 말이 끔찍한 저주처럼 느껴졌다. 아리아는 그녀도 알 수 없는 제 죽음을 떠올린다. 죽어서도 이 저택에 남아있게 될 것만 같았다. 다자이의 방, 구석진 곳에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제 시체를 떠올렸을 때, 아리아는 그제야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평생, 저택에 있을 수는 없죠.”

변명처럼 어쩌면 다짐처럼 다급히 말을 내뱉는다. 되도록 다자이 가문의 저택에서 지내는 편이 안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영원하다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던 부모가 타인의 손에 박해당해 화형당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아리아는 영원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누군가와의 이별을 대비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떠나려고? 다자이가 묻자 아리아는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끝까지 남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을 이어 나갈수록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이 떠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죄책감은 아리아의 생각과 달리 부피를 키워나갈 뿐이었다.

“죄송해요. 도련님.”

“자네가 내게 죄송하다고 할 필요는 없지.”

“당장은 떠나지 않을 거예요.”

“갈 곳도 없지 않은가.”

“……그것도, 그렇고요.”

“떠날 때가 되면 떠나겠지. 자네도. 나도.”

다자이는 아리아의 등을 떠민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 이끌려 다자이의 방과는 정반대의 복도 쪽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도련님? 아리아의 말에 다자이는 그녀의 등을 느리게 토닥인다. 그 천은 자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하도록 해. 내 어미에게 가져다주든. 태우든. 땅에 묻든. 자네가 일평생 가지고 있든. 편하게 처리해도 좋아. 등을 떠밀던 손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리아는 다자이를 돌아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다자이가 서 있는 뒤를 돌아보길 반복한다. 다자이는 뒷짐을 진 채로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볼 때면 빨리 가라는 듯 손짓하기도 한다. 아리아는 얕은 숨을 내뱉으며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별채를 향해 걸었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몸이 잘게 떨렸다. 그녀는 오비 위에 손을 얹고서 사이에 끼어있을 천 조각을 속으로 곱씹는다. 다자이가 남긴 말 하나 때문에 아리아는 가지고 있는 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알 수 없었다.

아리아에게 배정된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고서 가빠진 숨을 내뱉는다. 겹겹이 두른 오비의 틈새에 손을 넣어 천을 끄집어낸다.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에는 천을 태울 만한 것도 없고, 이것을 묻을 수 있는 땅도 없었다. 대뜸 주인마님을 찾아가 이것을 보여주는 건,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짓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핑계와 변명에 가까웠다. 다자이를 위해서 이 천을 감추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랫입술을 흰 윗니로 꾹 내리누른다. 미약한 통증에 미간이 좁아진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눅눅하던 천에 주름이 진다. 아리아는 결국 옷장을 열어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낸다. 뚜껑을 열자 안이 드러난다. 안에는 성경과 로사리오가 들어있다. 이 상자는 아리아의 죄를 담아낸 작은 고해성사실이다. 그녀는 새로운 죄가 될 천을 안에 가지런히 얹어두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성경의 표지를 쓸다가 곧 황급히 뚜껑을 다시 덮어낸다. 옷장 깊숙한 곳에 상자를 넣어두고 문을 닫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리아는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어두운 방에서 기도하듯 모은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댄다. 그녀는 제 부모를 죽게 만든 신에게 기도한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단순히 이것 또한 습관처럼 굳어진 것일 뿐이다. 완벽한 타지에서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장소에서 안정을 찾을 방법은 그녀의 부모에게서 답습한 행위밖에 없었다. 눈을 질끈 감는다. 아리아는 다자이의 죄일지도 모르는 것을 감춘 자기 자신을 책망했다. 합리화했으며, 모든 것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구는 남자 또한 불쌍하다고 읊조린다. 기도의 끝은 평소와 같았다. 이런 자신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굽어살펴달라는……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이 고해마저 안타깝게 여겨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리아의 기도는 그녀의 부모에 비해 비교적 짧았다. 신을 믿지 않았으나, 기댈 곳이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존재뿐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리아. 안에 있니?”

얇은 장지문 너머, 빛이 아른댄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얇은 종이에 비추어진다. 안 바쁘면 와서 채소 손질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나긋하게 묻는 여자의 말에 아리아는 차림새를 정돈한다. 장지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자 등불을 든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피로가 켜켜이 쌓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럴게요. 오사무 도련님이 오늘은 그러라고 하셨어요. 다자이의 허락이 담긴 말을 잊지 않고 남긴다. 말을 끝맺고서 아리아는 유순한 미소를 입에 겨우 머금는다. 그러면 아리아의 앞에 선 여자는 익숙하게 그녀와 함께 주방으로 가기 위해 발을 떼어내었다. 아리아는 따라 걸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이 가문의 막내 도련님. 그가 남긴 천. 그리고 상자 속에 넣어둔 그녀의 죄 같은 것들…….

 

 

 

 

근래, 주인마님의 몸이 좋지 않다. 당연하겠지만, 주인어른은 예민해졌고 그와 그녀 사이에서 만들어진 자식들은 대부분 침울해져 있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멀쩡한 것은 다자이 오사무밖에 없었다. 다자이는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항상 그래왔듯 책을 읽었다. 아리아에게 서적을 파는 가게에 가서 책을 사 오라고 하기도 했으며, 이따금 아리아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서 오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리아는 또 그의 말을 따라 약품인지, 아닌지도 모를 것을 품에 끌어안고 저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무게가 있는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둔다. 다자이의 시선이 아주 잠시 아리아에게 닿는다.

“다녀왔어요, 도련님.”

“고생했어. 거기에 두고 가도록 해.”

“……조금 쉬다가 가도 되나요?”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그것은 자네의 자유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기 짝이 없는 투로 말하는 게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아리아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그녀에게 허락된 자리로 가 앉는다. 눅눅한 냉기가 천을 뚫고 올라와 피부를 찔러댄다. 몸이 잘게 떨린다. 코를 훌쩍이고 있을 때, 다자이는 아리아를 보더니 얕은 한숨을 내쉰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하오리를 벗어 아리아에게 툭 던지듯 건넨다.

“이게 뭐예요, 도련님?”

“하오리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모르진 않죠.”

“걸치고 있도록 해. 멍청하게 벌벌 떠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어서 이러는 거니까.”

하오리 천을 매만진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좋은 옷을 제가 걸치고 있어도 되나요? 아리아의 물음에 다자이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따지면 입어도 될 옷은 또 어떤 것이지? 비꼼이 섞인 그 말에 아리아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숙여버리고 만다. 다자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닫더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문장을 훑어내리는 눈,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얇은 손가락. 다자이는 책을 읽으며 느리게 입을 떼어낸다. 자네는,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었지? 그 말에 아리아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갈 곳? 그녀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국적인 외모는 이 나라에서 눈에 너무 띄어 돈이 있어도 타지로 향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찌저찌 돈을 구해서 배에 오른다고 한들 이전에 부모와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네. 받아준 곳이 이곳밖에 없어서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말을 더 잇기가 힘들었다. 제 입으로 부모의 죽음을 내뱉는 건,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박해당한 죽은 자네의 부모 말하는 건가?”

“……네. 그렇죠.”

“하기야. 요즘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유독 심했었지.”

“그래서,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힘들겠지. 자네의 외형은 누가 보아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의 것은 아니니까.”

안타깝군. 안타까워. 혀를 끌끌 차는 다자이가 누구를 안타깝게 여기는지 알 수 없었다. 유독 아리아에게만 박하고 고달픈 인생을 안타깝게 여기는 걸까. 아니면 박해당해 죽어가는 가톨릭 신자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걸까. 애초에 안타깝게 여긴다는 마음을 다자이가 갖고 있기나 할까? 저 남자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저 남자가 안타까움을 안다고? 아리아의 눈이 혼돈으로 물든다. 남자는 그녀를 힐끗 보다가 책으로 입을 가린다. 그러더니 곧 작게 소리 내어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나도 안타깝다는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네.”

“그런.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 불경한 생각…….”

“자네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은 알 수는 있지.”

“도련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세요?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신? 내가?”

다자이는 들어서는 안 될 농담을 들은 것처럼 배를 감싸 쥐고서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어떻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겠나. 하하, 하하하! 멍청하기 짝이 없어. 다자이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질수록 아리아의 낯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뺨이 뜨거웠다. 아리아는 손을 올려 손등으로 열기를 식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열기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얕은 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바닥에 둔다. 다자이의 하오리 자락이 다다미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차마 다자이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작은 쥐구멍 속에라도 머리를 밀어 넣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자네의 신이 될 수도 있겠지.”

“네?”

“말 그대로의 뜻이야.”

“도련님의 말은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제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렵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자네의 부족한 머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려면 어떻게 비유해야 할까…….”

다자이의 손이 아래로 향한다. 신이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 부처니, 예수니, 하느님이니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이고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징인지. 그리고 인간은 왜 그런 것을 믿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물음일세. 그것은 아리아를 그녀의 존재와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이켜 보게 만드는 질문에 가까웠다. 아리아는 가장 먼저 그녀 자신이 신을 헌신적으로 믿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했다. 아리아에게 신이란 그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 그녀의 믿음이란, 아주 어릴 적부터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시절부터 존재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온 것이자 동시에 부모에게 답습된 것에 가까웠다.

“생각해보게.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했다면, 신이 정말 신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면…… 자네의 부모가 죽었을까?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에 아리아의 몸이 움츠러든다. 아리아가 일평생 고뇌해왔던 불경한 생각이 그녀의 앞에 내리 떨어진다. 고민하는 것만으로 역천의 죄를 저지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딱딱하게 굳어간다. 몸이 잘게 떨린다.

“그만, 해주세요.”

“자네는 의존을 믿음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

성경 속에 있는 에덴의 뱀은 사실 다자이가 아닐까? 아리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망막 위에는 물막이 내려앉아 있다. 그만 말해주세요. 도련님. 아리아의 말에도 다자이의 입술이 벌어진다. 그는 아리아의 애원 섞인 말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신은 의존할 대상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네가 나밖에 남지 않는다면. 의존할 존재가 오로지 이 다자이 오사무밖에 없다면 내가 자네의 신이 되겠지. 그 예수니, 하느님이니, 아버지니 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가, 자네의 신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었다네. 끊임없이 이어가는 말을 발음하는 어투는 상냥하기 짝이 없었다. 목소리는 나긋했고, 부드러웠으며 그것은 다자이가 입가에 머금은 미소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게 전부일세. 이해했나?”

“제 말, 들리기는 하시는 거죠?”

“무척이나 잘 들린다만. 혹 자네의 눈에 내가 농자처럼 보이는 건 아니겠지?”

아랫입술을 짓씹는다. 아리아는 몸에 걸치고 있던 하오리를 벗어냈다. 주름이 크게 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옷을 접는다. 다자이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괸 채로 지켜본다. 하오리를 바닥에 내려두고서 아리아는 상체를 굽힌다. 먼저, 나가봐도 될까요. 그러자 다자이가 소리 나게 책을 덮는다. 안 돼. 그는 드물게 거절의 말을 내뱉는다. 아리아는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 다자이와 눈을 맞추었다.

“네?”

“안된다고. 여기에 있도록 해.”

“평소에는…….”

“그거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본래 귀족이란 게 더럽게 까탈스러운 거, 알고 있으면서. 다자이는 다시 제대로 앉으라는 듯 손짓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 아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 차가운 다다미 바닥에 다시금 무릎을 꿇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모노 자락이 아리아의 손에 의해 주름진다. 미간을 찡그리지 않고 무표정을 고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다자이는 여전히 턱을 괸 채로 앉아 있다. 아리아의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듯 눈을 떼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가 눈을 아주 잠시 짧게 감은 순간에서야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리아의 숨이 점차 가빠진다. 그러면 다자이는 낮게 웃는다.

“뭘 그리 두려워하는 거지?”

“두렵지 않아요.”

“아니? 자네는 두려워하고 있어.”

“제가 뭘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씀이세요?”

“글쎄. 그건 자네의 상상력에 물어야 할 듯한데. 인간의 상상력은 참으로 무섭지.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혼자 우울해하고, 혼자 즐거워하며,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는 점이.”

“……저는 그런 적 없어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아니고?”

아리아는 다자이의 말을 완벽하게 완곡히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리아는 많은 것을 상상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두려워했었으니까. 박해당해 죽은 제 어미를 볼 때면 숨을 거두지도 못한 채로 불에 타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냈었다. 그래서 성경과 로사리오를 상자 속에 넣어둔 것이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그것들로 인해 박해당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공포로 굳어진 지 오래였다. 아니에요. 아닐 거예요. 아리아의 목소리가 두서없이 떨렸다. 다자이는 그 말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감기도 했다.

“그런 거로 할까.”

“정말 아니라니까요. 도련님.”

“난 부정한 적 없어. 아리아. 자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게 그리 중요한가?”

개개인의 생각은 인생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게 아닐세. 자네가 이건 꼭 알아두는 게 좋겠군. 다자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리아는 결국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남자는 아리아의 표정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꼭 놀란 사람이 보이는 행동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다. 부러 놀란 척 안 하셔도 돼요. 짜증스레 말하자 다자이가 웃는다.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것은 뱀의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깨진 유리 조각이 박혀있는 것 같기도 했다. 위로 올라간 입꼬리,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 말을 듣지 않고 외형만 본다면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남자. 그것이 다자이였고, 아리아는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다자이의 겉가죽에 속지 않았다. 그는 지금 즐거워하고 있다. 유쾌해하며, 인생에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 있는 저열한 욕망을 마음껏 채우고 있다. 도련님은 정말, 최악이에요……. 힘없이 내뱉은 말에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만, 본래 인간이란 누군가에겐 최악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네.”

“그런 점이 별로예요.”

“나도 자네를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을 종종 느끼곤 해.”

“한 마디도 안 져주시네요.”

“져 줘야 하는 이유라도?”

저 여유로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아리아는 그녀가 아끼고 아껴 겨우 모아둔 푼돈을 전부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로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쥔다. 다자이는 키득거리며 입을 연다. 그렇게 있으니 평소보다 한참은 더 못나 보이는데. 멍청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노골적인 말에 아리아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다. 제가 못나 보이면 뭐, 도련님에게 문제가 되나요? 도련님이 뒤에서 욕을 먹으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린다. 짜증을 못 이겨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을 곱씹을 때마다 매질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리아의 입이 서서히 다물어진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맞닿았을 때, 다자이는 아리아와 눈을 맞추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났나?”

나직이 묻는 모습에 오히려 기세가 꺾였다. 화를 내지도 않고, 낼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구는 무던한 모습에 아리아는 얕은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네. 하고 싶은 말, 다 했습니다. 힘없이 내뱉은 말이 끝나자 다자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아리아의 옆으로 걸어가 앉더니 그녀의 좁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자네가 내게 무척이나 주제넘었고, 무례했다는 자각은 있겠지? 다자이는 아리아를 탓하는 것처럼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리아는 더더욱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자네가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준다면 이 일은 묻어줄 수 있다네.”

“어떤, 부탁인가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야. 무척이나 쉬운 일이지. 애초에, 어려운 부탁이라고 한들 자네가 지금 가릴 처지는 아닌 거 같은데.”

다자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았기에 반발심이 들었고, 반발심이 들었음에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자이는 아리아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아리아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다자이에게로 시선을 둔다. 부탁이 어떤 것인가요. 도련님. 저는 도련님처럼 부유한 집에서 자라지 못해 물건을 보는 눈도 없고, 그게 있다고 한들 그것들을 구할 돈도 없으며, 있는 거라곤 이 몸밖에 없는데…… 제가 대체 뭘 해드릴 수 있나요? 색 옅은 푸른색 눈동자 속에 다자이가 맺힌다. 다자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리아. 우리 저택 뒤에 산이 있다는 거, 알고 있지? 다자이의 말에 아리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가 말하는 산을 떠올린다.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 해가 드는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곳. 거기는 저택에 모든 사용인이 가고 싶지 않아 했다. 호수에는 갓파가 살고, 하늘에는 텐구가 날아다니며, 나무 사이에선 누에가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닌다고. 그곳에 가면 무언가에 잡아먹히게 된다고. 그리고, 거기는, 거기에서는…… 항상 다자이의 곁에 있던 사용인들이 시체로 발견되었었다고. 아리아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린다.

“절 죽이시려고요?”

“내가? 자네를 왜.”

“죽이실 생각이에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거지?”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고작 그게 듣고 싶은 건가?”

“고작이라고 할 게 아니에요.”

아리아에게 있어 그것은 목숨줄과 같았다. 다자이는 그가 했던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매달릴 것은 그거밖에 없었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쉬이 포기할 것 같지 않은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간절히 말해서인지. 그저 들어줄 기분이 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웬일로 아리아가 바라는 대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자네를 죽일 생각이 없어. 그저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다네. 아리아, 네게도 도움이 될 일이야. 분명.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의 얇은 피부를 간질일 때면 다자이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소등 후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산 중턱으로 오도록 해. 날이 추울 테니 옷을 두껍게 입는 게 좋겠군. 답지 않게 걱정과 비슷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아리아는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리아는 다자이의 말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그는 지금 그녀의 무례함을 한 번 눈감아주는 걸 담보로 잡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갈게요. 도련님.”

그렇게 할게요. 도련님의 말대로. 도련님의 뜻대로. 아리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의 끄트머리가 흐리고, 발음은 뭉개져 있다. 다자이는 당연하게도 그런 아리아를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가 더 짙어졌다. 다자이는 무릎 위에 얹어진 아리아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는다. 그리고 먼저 무릎을 편다. 아리아는 다자이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다. 다리가 저린 탓에 반쯤 굽어진 무릎. 그로 인해 우스꽝스럽게 서 있는 아리아를 배려하듯이 아주 느리게 밖으로 이끈다. 아리아는 제 손바닥에 닿은 다자이의 피부를 느낀다. 다자이의 손은 험한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증명하듯 마냥 부드러웠었다. 책을 자주 펼쳐 종이를 매만진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피부는 항상 조금 건조했었다. 그런데 왜, 오늘은 마치 기름이라도 묻은 것처럼 미끄러운 걸까.

“도련님, 혹시 주방에 가신 적이 있어요?”

“주방은 왜 말하는 거지?”

“손이 조금, 미끄러워서요.”

“등불에 기름이 다 떨어져 직접 채우느라 그랬을 수도 있지.”

“저를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그 정도는 직접 할 수 있다네.”

다자이는 아리아를 그녀가 머무는 별채까지 데려다줄 생각인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와 함께 거니는 복도에선 역한 기름 냄새가 미약하게 났다. 도련님. 복도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아리아의 물음에 다자이는 여상스럽게 대답한다. 누군가 등불의 기름을 흘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사소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리 신경 쓰이면 코라도 막는 게 어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 아리아는 코를 훌쩍였다.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자네가 조금 예민한 걸지도 모르지. 손등을 엄지로 쓸어내리며 말을 덧붙이기까지 한다. 다자이의 말에 그녀는 지금 제 기분과 감정을 다시 훑어내린다. 예민한 걸까. 요즘 예민하게 굴 만한 일이 많기는 했지만……. 입을 떼어냈다가 닫기를 반복한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도련님의 말대로요.”

“그래. 그러니 깊이 생각하는 걸 잠시 멈추고 다른 걸 생각해보도록 해.”

“이를테면요?”

“이를테면, 오늘 밤에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산으로 오는 방법 같은 거?”

“……자신 없는데요.”

“하하. 괜찮을 거야. 아무도 자네에게 눈을 두지 않을 테니까.”

그 누구도 자네를 볼 수 없을 테니, 괜찮다네. 다들 잠들어있을 시간이지 않은가. 다자이의 말은 어딘가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리지도 않았기에 쉬이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기어코 아리아를 별채의 앞까지 데려다준 뒤에야 손을 놓는다. 소등 후에 시간이 지나면 오라는 말, 잊지 않았겠지? 귓가에 속삭이는 말이 어딘가 야살스럽게 느껴진다. 귓등을 간질이는 숨결에 몸이 움츠러든다. 다자이는 아리아를 내려보며 웃는다. 그녀의 등을 떠밀며 별채로 들여보내려 한다.

“푹 쉬고. 챙겨 나올 것이 있다면 가지고 나오는 것도 좋겠어.”

“여행을 가는 건 아니죠?”

“여행이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대체 뭘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별거 아닐세. 복잡하지 않고 아주 단순한 것에 가깝지.”

“도련님이 하시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건 자네가 멍청해서 그래.”

“안 갈래요.”

“그러면 하녀장에게 매질을 당하면 되겠군.”

“치사해요.”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리아에게 등을 보인다. 그는 손을 흔들며 복도를 느리게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보폭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았으며 다리가 구부정하지도 않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걷는 모습은 귀족의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리아는 다자이의 모습이 작아지고, 점이 되어 곧 사라질 때까지 그 복도를 눈에 담았다.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그가 그랬던 것처럼 등을 돌려 별채의 안으로 들어간다. 별채의 안은 고요했다. 이따금 드문드문 켜진 촛불이 어둑한 별채의 안을 밝히고 있다. 아리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방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 앉았다. 소등까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저택 안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의아하긴 했으나, 그런 날도 있었기에 의문은 쉬이 지워졌다. 작게 난 창문을 열어 밖을 본다. 역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바람이 방으로 들어올 때면 아리아는 미간을 찡그렸고, 곧이어 다자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조금, 예민한 걸 수도 있으니까. 도련님이 그렇게 말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이 냄새도 그 빌어먹을 예민함 탓에 느껴지는 거겠지. 분명, 그런 거겠지.

“언제쯤, 소등하려나.”

작은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져 형태를 잃는다. 어두운 저택을 비추는 것이라곤 달빛과 이따금 보이는 사용인들이 들고 있는 횃불과 등불뿐이었다. 아리아는 등불을 든 다나카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다나카 씨는 부산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손에는 등불과 나무통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통의 입구가 아래로 향해 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아래로 질질 흐른다. 아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다가 곧 다나카에게서 눈을 떼고 창을 닫는다. 저택의 불을 끄는 역할을 맡은 다나카가 돌아다니는 걸 보니 곧 소등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리아는 앉아 있던 이불에서 일어나 장롱으로 걸어간다. 문을 옆으로 밀어 연다. 안에 있는 도톰한 겉옷을 안아 들고서 잠시 고민한다. 그녀의 눈은 아주 깊숙한 곳에 넣어둔 상자에 닿아있다. ……저걸, 가져가는 게 좋을까? 아리아는 겉옷을 잠시 바닥에 내려두고서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상자를 연다. 안에는 닭장에서 보았던 천 조각과 아리아의 개인적인 비밀이 담겨있다. 그녀는 손을 넣어 안을 헤집기 시작한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걸리는 얇은 줄을 쥔다. 부모가 남겨주었던 유품이자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로사리오를 내려본다. 들고 나가도 괜찮을까? 고민이 길어진다. 한참 로사리오의 줄과 십자가를 손으로 매만지던 아리아는 곧 그것을 겹친 기모노 천 틈새로 밀어 넣었다. 바닥에 내려두었던 겉옷에 팔을 넣고 입는다.

모든 준비를 끝 맺힌 아리아는 시간이 지나고, 방의 문을 열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불을 다 끈 모양인지 아주 미약한 빛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벽을 짚어가며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눈에 어둠이 익을 때까지 아리아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엉성하게 걸어 나갔다. 문턱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을 때는 속으로 다자이를 원망했으나, 그걸 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별채에서 나와, 마당을 걷고, 마당을 벗어나 뒷산을 올랐다.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머리카락이 허공에 나풀댄다. 천이 다 가리지 못한 피부가 차게 식어갔다. 몸을 잘게 떨며 도착한 뒷산은 사용인들의 우려와 달리 무척이나 평화롭고 고요했다. 흔히 보이는 들짐승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다자이가 말한 산 중턱으로 가는 내내 아리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자이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따라오려는 생각인 건지, 아리아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자이의 의도가 어떻든 그녀는 지금 서 있는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얕은 숨을 내뱉으며 저택이 있을 장소에 시선을 둔다.

“……소등 했던 게, 아니었나?”

아스라이 보이는 듯한 저택에 아주 작은 빛이 고여있다. 그것은 조금 붉었고, 아주 미약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미간이 좁아진다. 아리아의 모든 신경은 그 미약한 빛에 머물러있다. 빛이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다. 돌아가는 게 좋을까? 아리아가 걸음을 떼어내려고 할 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주 규칙적이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다. 아리아는 그 소리를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고, 위로 올린 손을 로사리오가 있을 부근에 얹는다. ……도련님? 아리아는 그녀를 이곳까지 불러낸 사람의 호칭을 입에 담는다. 그러면 그 말 뒤로 낮은 웃음이 따라붙는다.

“넘어지지 않고 잘 온 것 같아 다행이군.”

“도련님. 그것보다 저택이 밝아요. 소등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돌아가야 하는 게…….”

“응? 자네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은 소등한 게 맞다네.”

“그러면 저택에 왜 저리 밝은 빛이 있는 건가요?”

이상하잖아요. 소등을 했는데, 빛이 보인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잖아요, 도련님.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아리아의 말에 다자이는 그녀를 내려보며 더욱더 짙은 미소를 입에 머금는다. 소등을 했으니 더 밝게 보이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건가? 다자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을 아리아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아리아는 아랫입술을 이로 짓씹다가 다시금 입을 벌린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도련님의 말대로 제가 멍청한 걸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제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세요. 제발요. 아리아는 어쩌면 다자이의 말대로 자신의 머리가 타인보다 조금 더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다자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자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뭐가 그리 유쾌한지 크게 소리 내어 웃는다. 하하하! 마냥 맑은 웃음소리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은 아리아의 불안을 잠재우긴커녕 증폭시키기만 했다.

“그래. 내가 친히 멍청한 자네를 위해 설명해주도록 하지.”

다자이의 손이 아리아의 어깨에 얹어진다. 불이 나서 그래. 짤막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불이 난 건물을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화재와 불이 났는데도 저택이 소란스럽지 않다는 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방화인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화롯불이 다다미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도련님. 불이 났는데, 저택이 왜 저렇게 조용한가요? 불이 났는데, 도련님은 저택의 사람들을 단 한 명도 깨우지 않으신 건가요? 도련님은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그리고, 도련님. 왜, 어째서, 제 눈에는 도련님이 나왔을 때쯤 불이 난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아리아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린다. 미약하던 빛이 점차 커진다. 아리아와 다자이의 뺨에 선홍색의 빛이 내려앉는다. 나무가 타들어 갈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다. 아스라이 형태만 보이던 저택이 화마에 뒤덮여 어둠을 살라 먹는 횃불처럼 존재하고 있다. 도련님.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 돌아가서…… 주인님과 주인마님을 깨우고, 아니, 우선 사람을……. 아리아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다자이는 아리아의 입술 위에 손을 얹는다. 내 아비와 어미는 지금쯤 잠들어있을 거야. 누군가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주 깊게 잠들어있을 거야. 마치 아이를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나긋한 어투로 속삭인다.

“저렇게 불이 나는데 어떻게 잠들어계실 수 있어요.”

“글쎄. 나야 모르지.”

“도련님의 부모님이시잖아요.”

“내 부모? 그런 걸 부모라고 할 수 있기나 한가.”

다자이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아리아의 손목을 억세게 감싸 쥔다. 마치 아리아가 저택을 향해 가려는 것을 막겠다는 것처럼 손에 힘을 빼지 않는다. 가지 마. 아리아. 여기에 있어. 가봤자, 너는 네 부모처럼 불에 타죽게 될걸. 아리아는 화마에 뒤덮인 저택을 보고 속에 묻어두었던 부모를 떠올린다. 기둥에 묶여서, 산 채로 타들어 가던…… 아리아의 발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걸음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다자이는 아리아의 손목을 놔주지 않았다. 그녀가 저택으로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힘을 더 줄 뿐이었다.

“도련님. 제발요! 사람이 죽잖아요!”

“원래 사람은 언젠가 죽지.”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리 궁금하면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나.”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네뿐일세.”

버티지 못한 아리아가 고개를 돌리려 하자, 다자이는 그녀의 뺨을 감싸 저택 쪽으로 고개를 두게 한다. 눈 떼지 마. 계속 지켜봐야지. 네가 고향처럼 살던 저택인데. 마지막이잖아. 다자이의 손길이 억세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욱신거렸다. 통증이 가장 친밀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건 다 외면해도 돼. 하지만, 마지막에선 눈을 떼면 안 되는 거야, 아리아. 마지막이란 그런 거야. 아리아는 저택으로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눈을 뗄 수도 없었다. 그저 다자이의 뜻대로 그것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미적지근한 액체가 뺨을 타고 아래로 뚝뚝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저 화재가 요괴의 짓이라고 생각할 거야.”

“도련님은…… 도련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아리아는 그들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저택 내에서 겉돌았고, 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아리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기독교 박해를 당해 죽은 부모를 둔 타국의 아이를 꺼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아리아는 그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이해한다. 자네가 이렇게 슬퍼하는 건 신의 뜻인가? 아니면 자네의 천성인 건가. 이해할 수가 없군. 이해할 수가 없어.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모습이 악귀처럼 느껴진다. 몸이 잘게 떨렸다. 아리아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을 떨어대자 다자이는 그제야 손을 거뒀다. 동시에 아리아는 바닥으로 쓰러진다. 흙이 천과 손바닥에 묻어난다. 땅에 떨어진 로사리오를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엉금엉금 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저택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뱉는다.

“아리아. 이거, 소중한 거 아니었나?”

다자이는 아리아가 떨어트린 로사리오를 주워 그녀에게로 걸어간다. 그리고 아리아의 목에 로사리오를 걸어준다. 이제 자네가 기댈 곳은 나밖에 없겠군.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지? 고개가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뺨을 간질인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심장이 크게 박동한다. 불안하다. 불쾌하다. 우울하다. 울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더 흐르지 않았다. 아리아의 눈동자에 다자이가 들어온다. 망막에 맺힌 그 남자가 손을 올린다. 아리아의 등에 손이 닿는다. 그는 체구가 작은 여자의 등을 쓸어준다. 달래듯이, 품어주겠다는 듯이, 마치 신자를 대하는 신처럼…… 계속해서 손을 움직인다.

“내가 말했었지.”

아리아는 다자이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가 더 말하게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하게 질린 낯빛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자 축축한 흙이 손톱 틈새에 파고든다.

“내가 자네의 신이 될 수도 있다고.”

등에 닿아있던 손이 떨어진다. 그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아리아의 앞에 선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잡아. 그리고 일어나. 바닥이 차군. 계속 그러고 있으면 열병을 앓을지도 몰라. 아리아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잡으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안다. 되돌이킬 수 없고, 일평생 다자이의 곁에 남게 될 거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다자이가 아리아를 알고 있는 만큼 아리아도 다자이를 알고 있었으니까.

“저한테, 왜 이러세요?”

아리아가 묻는다. 아리아의 의문은 이제 그것밖에 없었다. 이유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법이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라는 단어로 포옹되지도 않을 상황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려면 다자이가 만들어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다자이는 아리아의 말에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다. 그것 또한 자네가 생각해 볼 일이지. 그는 아주 귀한 것을 다루듯 아리아를 일으켜 세운다. 마치 그녀의 하인이라도 된 것처럼 옷에 묻어난 흙을 툭툭 털어주기도 한다. 아리아는 멍하니 저택을 바라본다. 불똥이 튀고 있다. 화마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은 마을에 번지기라도 할 것처럼 크기를 키워나가고만 있다.

“아리아.”

“……네, 도련님.”

“어때. 이제 내가 좀 신처럼 느껴지나?”

자네의 신처럼, 느껴져?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는 손길이 다정하다. 아리아는 그를 올려본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훑는다. 모르겠어요. 저는, 도련님의 말처럼 멍청하니까요. 힘없이 뱉어낸 말에 다자이는 안쓰럽다는 듯 유순하게 웃는다. 괜찮아, 괜찮아. 자네가 멍청한 것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아, 오늘은 자네의 신에게 아주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리아는 손을 더듬거리며 로사리오 끄트머리에 달린 십자가를 감싸 쥔다. 아리아는 문득 떠오르는 말을 식도 뒤로 삼켜낸다. 말할 수 없었다. 말해서는 안 됐다. 당신과 같은 신이 있다면 나는 아마 이보다도 더 불행해졌을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 당신을 믿어서는 안 될 거 같다고.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리아는 마치 기도하는 신자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처럼. 그의 자비를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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